의사도 노동자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 명제를 꺼내면 여전히 찬반이 극명히 갈린다. 전공의들이 노조를 결성했다는 소식에도 비슷한 반응이 따라붙는다. "의사가 무슨 노조냐"는 반문이 그 대표적이다. 어쩌면 '노조'라는 단어에 얹힌 고정관념이 작동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가 극단적 구호를 외치는 이미지 말이다.
하지만 이례적이라 여겨질 뿐, 전공의 노조는 제도적으로도 정당하고 현실적으로도 필요하다. 다만 그 형식과 태도는 의사라는 전문직의 무게만큼 숙고되어야 한다.
전공의의 노동 환경은 오랜 시간 구조적 한계에 놓여 있었다. 열악한 수련 환경과 잦은 야간 당직,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 피드백조차 불투명한 평가 방식. 여기에 각 과별 편차는 극심하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병원에 있으나 정작 본인의 목소리는 바깥에 닿지 못하는 처지다. 목소리를 조직화하고 교섭력을 갖추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환자의 생명과 연결된 고도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자기 권리에조차 침묵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이다.
그러나 전공의는 의료인이자 동시에 피교육자라는 이중적 신분에 놓여 있다. 단지 '고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전문성을 계승하는 교육대상이라는 정체성도 함께 지닌다. 이 교육을 책임지는 이들은 바로 '지도전문의'다.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며 병원의 책임을 지는 일만으로도 벅찬 이들이, 추가로 교육의 책임까지 지고 있다. 환자 치료와 수련 교육을 동시에 감당하면서도, 이들의 노동은 종종 제도적 인정조차 받지 못한다. 병원의 인력 부족이 구조화되면서 많은 지도전문의들은 사실상 '교육노동'을 자비로, 혹은 사명감으로 감내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권리 주장이 타당하다면, 지도전문의들의 책임과 노고에 대해서도 정당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도전문의는 단순한 관리자나 고용주가 아니다. 그들 역시 긴 시간 수련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선 이들이다. 그 역시 수련체계의 산물이며, 의료 생태계를 유지하는 마지막 고리이기도 하다. 전공의는 당연히 부당한 현실에 맞서야 하지만, 그 목소리 안에는 적어도 이해의 시선과 존중의 태도가 담겨야 한다.
지난 의정 갈등에서 터져 나온 '스승은 중간착취자'라는 표현은 분명 과했고, '스승이라는 자'라는 말은 불필요한 반목을 키웠다. 그렇다고 그 말들이 공허한 외침은 아니었다. 그 뒤에는 오래도록 방치된 거리감과 단절의 실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의료계에 필요한 건, 다시 손을 내미는 일이다. 스승과 선배들이 먼저 제자들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말할 수밖에 없었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전공의들 또한 지도전문의들의 무게와 입장을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전공의 수련제도는 누군가의 헌신을 전제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전공의만큼이나, 지도전문의 역시 제 역할에 걸맞은 대우와 권한, 보호가 필요하다.
노조는 권리를 위한 장치일 뿐만 아니라, 조직의 품격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전공의 노조는 단지 전공의만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앞으로 의료계가 어떤 태도로 사회와 마주할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권리 주장이 곧 사회적 메시지가 되는 자리에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하다.
의사는 직능인이자 전문가다. 전문가에게는 전문성만큼의 책임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건 바로 그 책임의 자세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자기 권리를 말하는 자리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전문가 집단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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