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구슬 서 말도 꿰어야 보배다' 상투적이지만 작금의 공공 의료 데이터 활용 현실에 들어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공공 의료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AI 기업들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혁신을 외치는 정부의 구호와 달리 현장 기업들은 데이터 갈증에 시달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제 감사원 감사 결과, 주요 정부·공공기관들이 대규모 의료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실제 AI 기업에 제공한 실적은 극히 적었다. 일례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MRI·CT 등 비정형데이터 20만 6848GB를, 국립암센터는 암 진단·치료 관련 비정형데이터 23만GB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지난 5년간 AI 기업에 제공한 정형데이터는 17건에 그쳤다.
관련 데이터가 표준화되지 않아 자료 추출이 어려웠던 탓이다. 데이터 이용 자체도 방문을 통해서만 가능한 데다가 평일 근무 시간에만 접근할 수 있는 등 불편이 컸다.
의료 데이터를 습득해 발전하는 의료 AI의 특성상 이들 데이터가 가진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기업들은 행정적인 이유로 연구 개발의 첫 단추조차 끼우기 어려운 실정이다. 감사원 역시 '이는 재식별 위험이 낮은 정보의 반출 확대를 유도해 온 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의 소극적인 행정과 불명확한 지침이 데이터 활용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규제가 명확하지 않을 때 생기는 불확실성은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 요인이 된다.
물론 의료 정보 유출 및 윤리적 문제는 중대 사안이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영역에서 통제와 관리는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데이터를 일률적으로 묶어 규제하는 방식이 적절한진 의문이다. 규제에 막혀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사업을 포기하는 국내 스타트업의 상황은 뼈아프다.
국내 시장 규제 문턱이 세계 시장보다 높다면, 과연 어느 기업이 국내에서 먼저 기술을 선보이려고 하겠는가.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골든타임을 실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종이 차트 시절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보안은 기술적으로 해결하고 관리해야 할 과제이지 데이터 개방 자체를 막는 가림막이 돼선 안 된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은 공격적인 데이터 활용 정책을 펼치며 산업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경직된 제도와 행정 절차에 묶여 제자리걸음이다. 대한민국 의료 AI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정작 제도가 관련 기업의 글로벌 선도에 발을 거는 셈이다.
데이터가 산업화로 이어지고 다시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환원되는 구조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다. 쌓아두기만 하는 데이터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데이터가 활용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국가적 자산이 된다.
단순 개방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활용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메아리뿐인 구호가 아닌, 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정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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