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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없는 이라크, 한국 의사들 오라

장종원
발행날짜: 2004-12-21 07:23:47

의사 하이셈 카심 알 리 씨

이라크에서 온 의사 하이셈 카심 알 리 씨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하는 의사 ‘하이셈 카심 알 리’ 씨(38.바그다드 적신월사 근무)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라크 파병국인 한국에 이라크 현지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가 전하는 이라크에서의 의료지원 상황은 암담하다 못해 끔찍하다. 유통기한 뿐아니라 성분명과 효능까지도 알 수 없는 의약품은 물론이고, 치료할 침상 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하이셈 씨는 이라크에 정녕 필요한 것은 한국 군인이 아닌 유능한 의사들이라고 강변한다. 동시에 국내 의사들과 관심과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다음은 ‘하이셈 카심 알 리’ 씨와의 일문 일답.

- 이라크에서 어떻게 활동을 하게 됐나

1968년 영국에서 태어나 3년후에 이라크로 건너와 살았다. 이후 이라크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과정을 위해 다시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 런던에서 일반외과 4년간의 수련과정을 받는 도중에 마지막인 4년차. 2003년 3월 대규모의 반전 시위에 참여한 후 수련과정을 그만두고 이라크로 돌아갔다. 수련보다 이라크를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라크 현지에서 하고 있는 활동은

적신월사(한국에서는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대부분 외국에서 들어오는 자본과 메디케어에 의존해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팀은 의사 25명에 간호사와 직원들이 10여명이 된다. 이같은 규모의 5팀 정도 활동하고 있다.

의사들은 유럽계 의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파키스탄 계 의사들이 많다.

우리는 이라크 전역을 방문하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경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상존한다. 우리팀에서만 벌써 3명의 의사가 목숨을 잃었다. 나 역시 오른쪽 발에 총알 파편을 맞았다.

미군의 공습 이후 팔루자에 들어가기 위해 팔루자 경계에서 3일간 기자들과 기다렸으나 미군의 제지에 의해서 실패했다. 팔루자에 2곳의 병원이 있었으나 미군의 첫날 공습으로 파괴됐다. 6주동안 팔루자에는 아무런 의료지원도 없었다.

- 미국 침공 전후의 이라크 의료 상황을 설명하면

침공 전만 해도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로 일부 부족하기는 했으나 거의 100% 약과 의료진이 완비됐다. 최소한 합법적이고 유용한 의약품 시스템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당뇨병·고혈압 등을 앓는 사람들이 한달에 한번 병원가서 무료로 한달치 약을 탈 수 있는 시스템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모든 병원과 의료기구들이 파괴됐다. 의사들은 일하러 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나마 남은 병원에서도 Bed가 없어 바닥에서 치료받는 실정이다. 이라크의 여름은 온도가 60도에 달한다. 매일 20% 정도 전기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메디컬 케어는 상상을 할 수 없다.

- 특히 의약품 공급 상황은 어떠한가

사람에게 유효하게 사용되는 약을 구할 수 없다. 우리에게 지원되는 약은 제조회사, 약 종류가 제대로 파악이 안되는 상황이다.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폐기된 의약품이 들어온다. 단순히 무슨 약이라는 말만 듣고 사용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약의 종류를 확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사람들은 약이라면 무조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음에 따라 이제까지 없었던 질병이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 주민들이 티그리스-유크라데스 강의 오염된 물을 그냥 마시기 때문에 병이 창궐하고 있다. 방사능 오염에 의한 사례도 있는 것 같다.

- 한국군의 파병에 대해서 알고 있나

한국군의 역할은 하나는 안전이며 다른 하나는 재건인데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없다. 한국군 주둔지인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구로서 15년간 사실상 분리돼 이라크라고 하기 어렵다.

이라크 사람들은 군대를 보낸 사람이면 누구나 미워한다. 한국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와 사람은 다르다. 한국정부는 미워하지만 한국 국민들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군대를 보내는 것은 갈수록 이라크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전쟁을 끝내는게 우리의 고통이 없어지는 길이다.

- 한국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의 재앙은 너무 크다. 밖에서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 의사들이 이라크를 방문한 적이 있는 걸로 알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한국 의료진들이 이라크에서 와서 무슨 일이든 해줬으면 좋겠다. 지금 이라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는 참혹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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