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집행부가 출범식을 갖자마자 처방전 2매 수용 방침과 관련하여 회원들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으며 홍역을 치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기사에 의하면, 지난 5월 2일 장관 면담 내용과 관련하여, 조제내역서 발행 의무화를 장관이 분명히 약속했느니, 약속한 적 없느니 하면서 처방전 2매 공방은 이제 그 전제가 되었던 조제내역서 약속의 진위 여부를 놓고 의-정간 갈등으로 회귀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상대는 떡줄 생각이 없는데 우리 의료계만 “처방전 2매 수용을 위한 대회원 설득과 이로인한 집행부-회원들간의 분란이라는 홍역을 치르고 ”처방전 1+@와 조제내역서“라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러한 갈등과 공방도 나름대로 역동적인 의의가 있을 것이지만, 김재정 신임 집행부가 중요한 출범 초기에 이 문제로 입게 된 대회원, 대정부 위상 저하라는 손실은 매우 안타깝다.
따라서 김재정 신임 직선 집행부는 출범 초기부터 처방전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고 생각하고 값진 교훈을 찾았으면 한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정부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의 중요성과 원칙에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수장들끼리 만나 악수하고 립서비스 주고 받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평회원들은 항상 수장들간에 이루어지는 이른 바, ‘담판’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다.
그리고 이론상으로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책 주체들간의 현실적 신뢰관계를 수반하지 못하면, 정책취지의 왜곡을 피할 수 없는 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료정책의 수행에 있어서 의-정간 파트너 쉽이란 의사들만의 요구사항이 아니라, 국민건강과 한국의료제도의 미래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따라서 전국민적인 요구인 것이다.
의약분업 5.10합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것이 이나라 전체 의사와 정부,시민사회간의 진정한 “사회적 합의”가 아니었다는데 있었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라는 형식을 빌은 소수 상층부 엘리트들만의 정치적 흥정과 역학관계의 결과였으며, 오히려 진정한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봉쇄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의협은 대정부 관계를 모색할때 항상 8만 전체 의사와 정부 당국 사이의 대립과 반목의 근원을 따져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신임 집행부는 취임 초기 원만한 대정부 관계를 생각하고, 처방전 2매를 회원들에게 설득하겠다는 어쩌면 “대단한 용기”를 실천에 옮겼지만, 오히려 대회원 신뢰의 손상을 가져왔다.
나는 신임 집행부가 선거시 공약대로 애초 정부의 처방전 행정처분 규정 관철 기도에 대응해서 정부의 의약분업 정책 3년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 작업을 요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와의 관계 정립에 있어서 지난 3년간의 의약분업 분쟁의 실마리를 풀지않고는 “새로운 관계 정립”이란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 처방전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책입안자들은 걸핏하면 외국의 사례를 모방하기 좋아하지만, 선진 외국과 우리의 의료현실은 근본적인 토양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정책 시행자인 정부가 그 파트너인 의사를 개혁 대상화 한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의료현장의 의사들이 정부에 대해 불신을 넘어 극한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있다.
시민단체의 건강 지킴이(?)으로서 정치적 주가를 높혀줄 목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처방전 매수 관련 처벌규정을 만들어 강제할려고 하는 정부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정부 밖에 없고, 집행부의 처방전 2매 수용 입장을 벌떼처럼 일어나 성토하는 의사는 다름아닌 대한민국 의사이다.
이런 의-정간 대립과 불신은, 앞으로 정부가 시행할려는 산적한 의료 정책들에도 마찬가지로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정간 대립과 불신을 해소하는데 있어, 의사 대표조직인 의협은 누가 회장이 되든 희생을 무릅쓴 일관된 원칙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
집행부가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지만, 개인적인 업적쌓기나 실리추구에 매몰된다든가, 전체 의사의 대표조직으로서 사상적 태도가 불철저하고 헌신성이나 용기가 부족하다보면, 이런 전략적인 접근은 수시로 포기되는 것이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의협의 모습이었다.
또하나 생각해볼 문제는, “다수 회원 대중을 설득한다”는 것에 대해서다.
이번에 집행부가 정책적 판단을 가지고 회원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나름대로 용기있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 집행부에 대한 불신과 의혹만 키우고 대내외적으로 집행부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신임 직선 집행부는 그 이유를 뼈아프게 반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의협은 두번째 민주적인 직선 집행부를 맞고 있지만, ‘대표성’의 절차적 형식이나 영웅적인 인기, 혹은 정치적 수완이나 정책능력으로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권위’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걸핏하면 지도부가 자신의 헌신성과 자질 부족, 그리고 용기없음을 회원들의 무지와 단순함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는 행태가 있어왔다.
그러나 “다수 회원 대중의 반대 정서를 무릅쓰고 이를 설득한다”는 것은 민주적인 지도부의 태도,사상,자질,능력의 문제이지 결코 회원 대중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다수 회원의 정서나 의견을 집행부의 설득으로 바꿀 수 있는 힘, 바로 이것이 진정한 민주적 리더쉽인 것이다.
그것은 오랜 대회원 신뢰를 바탕으로 집행부가 모든 회무를 투명하고 공개적, 민주적으로 운영하며, 회원에 대해 헌신적이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체 회원의 대의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라는, 바로 그러한 “믿음과 민주적 권위”가 있을때 가능한 것이다.
집행부의 이번 대회원 설득은, 설득의 이유가 정당하고 투명하지도 못했으며, 과정과 절차가 민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신임 집행부 출범에 많은 회원들이 기대를 품었지만 지도부에 대한 믿음과 민주적 권위가 수반될 수 있는 과정도 없었다.
회원들은 집행부를 겪어보지도 못하고 석연치않은 일로 ‘설득’부터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나는 대한의사협회의 회원으로서 내가 뽑은 대표자에게 언제나 즐겁게 ‘설득당할 수 있는’ 협회의 회원이 되어보는게 소원이다...
이번 일로 속상한 면도 없지 않겠지만, 수고하시는 의협 회장님이나 집행부 선생님들이 이번 처방전 홍역의 의미를 반추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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