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농담이 있듯이 예비군 셋이 모이면 하나같이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가 하늘을 찌른다. "완전군장에 천리행군을 했다"에서 시작해 고참에게 얼차려받은 이야기까지 자신의 고행담을 늘어놓으며 예비역들은 '자랑아닌 자랑'을 한다.
의사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누군들 안 그러할리 없지만 수련생활을 겪은 의사들은 공히 뜬눈으로 밤낮없이 고생하던 그 때를 이야기한다. 기실 이러한 고생들이 현재 어엿한 전문의로서의 바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네들이 말하는 고생이 과연 그렇게 했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은 들기 마련이다.
최근 상계백병원 인턴 30여명이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 병원을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파업을 선언하며 성명을 통해 인턴 숙소 개선, 가을인턴 모집, 인턴업무 수행 및 procedure시 적절한 지원, 인턴수련 목표에 맞는 역할 제고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이러한 요구사항들은 굳이 파업까지 단행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파업을 결심한 것은 기본적인 것도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수련하고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고 이는 비단 상계백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수십개 수련병원의 공통적인 상황이다.
한가지 의아했던 점은 파업 문제 해결 과정에 있어 병원측과 인턴대표측이 보여준 태도였다.
당연히 병원측은 "다른 병원에서도 늘상 있는 일이며 상계백병원만이 문제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런데 인턴측 대표도 또한 "병원 내부의 문제이며 자꾸 여론화되는 것이 병원과의 협의에 있어 불안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며 완곡한 취재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상계백병원 내부의 문제이며 이같은 사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는 한편 여론화를 이유로 수련환경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호기가 아니였나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루에 몇 시간 잘 수 없고 이것저것 허드렛일까지 도맡아해 오던 현재의 인턴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들도 절감하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부의 문제'라는 이유만으로 숨기려들고 각종 연락망을 차단했으며 비밀리에 협의를 진행했다.
'한 두번 있는 일도 아니였는데 상계백병원만 그토록 부각시키는 이유가 뭐냐'는 대답보다 병원과 인턴측 모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련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틀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대답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임동권, 이하 대전협)이들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수련환경의 개선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인턴 파업시 단위 전공의협이 적극 지지를 표명하며 행동을 같이 했던 가 하면 대전협도 지지와 함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선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에는 수련환경 전반에 걸친 문제를 인권위에 제소하는 등 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이는 당사자들의 문제에서 그칠 것이 아닌 의료계 전체의 문제이다. 의료계 선배들의 많은 노력과 병원 경영진의 의지가 합치되는 순간, 더 이상 의료계 내에서 "내가 인턴시절엔 말이야..."라는 말은 발붙일 곳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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