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개인 보다 사회가, 인성보다 신성이 우선되었던 암흑의 시기가 끝나고, 대중의 시선이 막 신성(神性)에서 인간성(人間性)으로 옮겨지기 시작 할 때가 바로 르네상스 시대이다.
르네상스는 중세사회에 사회 문화적인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으며, 바로 이시기에 음악,미술,문학 에서 인간을 주제로 한 불멸의 작품들이 쏟아지고, 기계문명과 활자 문명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도 만사가 좋은일만 있는 경우는 없는 법이라, 이 무렵에 "페티" 라는 이름의 루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서슬퍼런 신의 계율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각인 되어 있어, 거짓말은 10 계명중 제 8계명에 위반하는 중죄였기때문에, 거짓말은 지옥에 이르는 큰 죄악으로 교육받고 그렇게 믿었던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교회에 대한 일종의 딴지걸기로서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이 당시 "피에트로 아레티노"라는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그는 당시에 발달 한 출판 인쇄문화 덕에 한페이지 짜리 "소식"지를 발행 하였으며, 그 "소식"지에는 궁정과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던 위선,타락,매수,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심지어 추기경의 비행이나 추문들에 관한 풍자시를 실음으로서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 하였다.
한편 이러한 대중적 지지는 초기에는 권력과 갈등하고 길항하는 입장에 서게 하였지만, 이후 그를 제거 하기위한 귀족들의 온갖 음모와 노력이 실패하면서 오히려 귀족들은 그와 타협을 시도하였다.
당시 교황 레오10세.클레멘스 7세.카를 5세 황제.프랑스왕 프란츠 1세등은 결국 그가 만들어 내는 가공할 정보와 전파의 힘에 굴복하여 그에게 뇌물을 제공하기 시작하였으며, 나중에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한 소극적 타협에서 벗어나 그를 이용하여 대중으로부터 우호적인 평가를 얻어내려는 적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졌다.
결국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언론의 위력을 이용한 사람 이었으며, 루머의 속성을 이용 할 줄 알았고. 또 그것을 이용해 부와 권력을 축척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언론의 속성을 절묘하게 이용한 또 다른 사례로 "매카시" 미국 상원 의원의 사례가 거론된다.
그는 소위 "매카시 선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나, 약간의 좌선호적 사상을 모두 공산주의로 몰아 부쳐 세계 자유주의의 상징이라는 미국땅을 얼어 붙게 만들었다.
이러한 매카시즘은 1946 년에서 1956년 까지 10년간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에서 시작해서 1만 2000명이 실직 하였고, 미국 시민들을 단체에 가입하거나,비판적 발언을 두려워하게하는 냉기로 가득한 사회로 몰고 갔다.
심지어 사람들이 서명을 두려워 해, 1950 년 대 중반 시카고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의 학생 회관에 콜라 자판기를 설치하는데 필요한 서명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서 대학원 건물에 코카콜라 자판기가 설치 되지 못할 정도로 사회는 경직되었으며, 미연방 대법원 판사인 휴고브랙 조차 사상적으로 의심 받고 있던 자신의 조카딸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우리사회 역시 90년대들어 권위주의 정권이 물러나고 통제 당하였던 언로가 터지면서 가공할 수준의 유언비어와 루머가 난무하는 사회로 변질 되었다.
특히 언론들은 그들의 제 1의 책무인 객관성을 포기하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가 책임질 수 없는 루머의 양산지로서 각종 설과 주장을 쏟아내는 편향성이 난무하고, 독자들을 자신들이 공유하는 아젠다로 끌어들이려는 노골적인 주장들을 서슴치 않고있다.
사실 이러한 루머나 평향된 주장들은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이해득실과 관련되므로 그 부작용이나 파괴력이 가공할만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회는 루머나 왜곡된 주장을 생산하게 되는 언론들과 타협 할 수 밖에 없음은 "아레티노"의 사례에서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사회의 발전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통제하거나 검증하려는 시도에 따른 어슬픈 제제의 결과가 차라리 그들의 왜곡된 주장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언론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언론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소위 양심에 맡기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는 언론에 대해 그것을 단속하고 다스리거나, 통제하려는 발상보다는 스스로 아레티노의 아류들이 떠나가는 지배구조를 만드는데 진력하여야 한다.
즉 "루머나 왜곡을 단속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꾸로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 할 수 있다"라는 생각만큼이나 위험한 발상이며, 대중은 이러한 루머의 속성에 대해 오히려 끊임없이 긴장하고 역설적으로 겸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론이 만들어 내는 편향성과,왜곡, 그리고 루머는 그 사회의 단면 일 수도 있고, 그 언론이 속한 지적 정신적 풍토의 척박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으며 그것을 통제하려는 행위는 오히려 왜곡과의 게임을 즐기며 더욱 강력한 편향성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 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최근 의협신문의 행보를 보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의협신문은 의사협회에서 발행되는 특수지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의사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컨센서스를 공유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의사협회를 대표하는 지도부와 조직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임무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의협신문은 전달기사나, 학술기사를 제외하면, 현 지도부를 향한 용비어천가나 부르고, 현 지도부의 일방적 주장을 담아내는 기관지의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의사사회 대중의 일반적 정서나 목소리를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의협신문의 발행인이 의협회장이라는 특수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협신문이 최소한의 임무를 망각하거나, 비록 특수언론이라 하더라도 언론이 존재해야하는 기본적인 근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며, 만약 의협신문이 지향하는 바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다면 차라리 제명을 "의협신문"에서 차라리 "의협소식"으로 변경하는 것이 마땅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의협신문은 개선은 커녕 개악을 거듭하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
의협신문의 주간으로 현회장을 중심으로 인의 장막을 치고, 조직을 좌지우지한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고 있는 내부의 모 인사가 임명이 되었으며, 이것은 의협신문이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능을 포기하고, 수구적이고 독선적인 현 집행부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도구로 삼겠다는 노골적인 선언과 다름이 아니다.
이것은 의협신문이 아무리 특수지이기는 하지만, 지도부가 회원대중에대한 최소한의 양식을 저버린 만행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
가뜩이나 방향타도 없이 절벽을 향해 무모하게 내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 회원대중의 운명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의협신문마져 대중을 세뇌하는 나팔수로 만들겠다는 지도부의 심중은 그야말로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함의 절망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집행부는 현재의 의협주간을 사퇴시키고, 책임있고 객관적인 인사로 의협신문 발행인과 주간을 선정하여 의협신문의 발행을 독립시킨 다음, 의협신문이 우리 의사사회 전체의 건강한 목소리들을 담아 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것만이 역사상 최악이라는 현 집행부의 도덕성과, 치명적인 과오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조금이나마 덜어 낼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의협신문의 편집권 독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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