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의료계 숙원사업 의료분쟁조정법 적절한가
산부인과에서 시작된 의료분쟁조정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하위법령에 대한 반발 기류가 개원가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17일 의협 주최로 열린 의료분쟁조정법 관련 각과 개원의협의회 법제이사 연석회의에서 법안의 부당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 본격적인 공론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후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 과정을 진행 중인 의료분쟁조정법 내용은 적절한 것일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법 조항에 대해 짚어봤다.
"무과실 의료사고도 책임있나"
의료분쟁조정법에서 개원의들이 가장 반대하는 부분은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이다.
정부는 의료분쟁조정법 제46조에서 분만에 한해, 의사가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피해를 보상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의 시행령(안)에 의료사고 보상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의료기관 개설자와 정부가 동등한 비율(50%)로 부담하며, 보상범위가 분만시 발생한 뇌성마비로 국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의사협회가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 개설자의 비용부담을 10%로 정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심지어 개원의들은 무과실에 대해서는 10%가 아니라 1%도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보상 범위 또한 의료계는 분만시 발생할 수 있는 산모, 태아, 신생아의 사망 등 기타 무과실 의료사고를 포함할 것을 제안한 것과는 크게 다르다.
특히 무과실 의료보상에 대해서는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타 진료과 개원의들도 강하게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안과의사회 최승일 법제이사는 "법 조항에서는 분만에 대한 무과실 의료보상만 다루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법원 판례가 생기면 분만 이외에 의료사고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결국 산부인과만의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의료사고 난 적 없는데 왜 손해배상 대불금 재원 책임지나"
또한 의료분쟁조정법 제47조 손해배상금 대불과 관련해 개원의들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사고로 피해를 본 환자가 보상액을 지급받지 못했을 때 미지급금에 대해 조정중재원에서 대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또한 대불금의 재원 마련이 문제.
정부는 시행령에서 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기관에 지급해야 할 요양급여비용의 일부를 조정중재원에 지급하는 식으로 대불금 재원을 마련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두고 개원의들은 요양급여비용은 엄연히 개인의 수익인데 이를 의견 수렴도 없이 일괄적으로 원천징수한다면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비인후과개원의사회 안재신 법제이사는 "의사가 신용불량자도 아닌데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월급을 차압하는 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법이 시행되면 모든 의료기관이 의료분쟁조정기금을 의무적으로 내야한다는 말이냐"면서 "의료분쟁의 유무와 무관하게 최근 설립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도 유지하고, 환자에 대한 보상도 공동으로 연대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냐"고 덧붙였다.
"조정신청 대리인에 의사단체 임원 못 나서나"
조정신청과 관련해 각과 개원의협의회 등 의료단체 관계자는 대리인으로 나설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는 점도 향후 논란거리다.
정부는 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에서 대리인 선임 조건으로 당사자의 법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존비속 혹은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 조정신청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대리권을 받은 자 등을 대리인 조건을 허용했다.
이외에는 변호사와 당사자인 법인의 임직원이 대리인이 될 수 있다.
현재 의료사고시 일부 개원의들은 시도의사회 혹은 각과 개원의협의회에 법제이사 등 임원진의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의 시행령안에 따르면 의사단체 임원은 대리인으로 나설 수 없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이 조항은 조정신청 과정에서 의료단체가 나설 수 없도록 한 것"이라면서 "현재 의료사고시 의료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함께 해결해주고 있는데 앞으로는 제약이 따를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의료사고 감정에 검사나 시민단체가 왜 참여하나"
이와 함께 개원의들은 의료사고감정단 구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 제25조 의료사고단 설치와 관련해 정부는 감정단은 50명 이상 100명 이내 감정위원을 구성, 의료분쟁의 조정이나 중재에 필요한 사실조사나 과실 유무 및 인과관계 등을 규명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감정위원은 의사(전문의 자격 취득 후 2년 경과), 치과의사 혹은 한의사(면허 취득 후 6년이 경과), 변호사(자격 취득후 4년 경과), 비영리 민간단체 임원 경력자(2년 이상) 등이다.
또 감정부에 검사 1명이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개원의들은 현재 정부가 제시한 감정위원단 구성이 의료사고를 정확하게 감정 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성형외과의사회 윤원준 법제이사는 "나 또한 성형외과 이외 타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분야가 전혀 다른 변호사, 소비자단체가 어떻게 이를 감정할 수 있느냐"면서 "자칫 인정에 휘말려 환자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식이라면 어떤 의사가 조정신청을 선택하겠느냐"면서 "차라리 민형사 소송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윤 법제이사는 "현재 정부안 그대로 법안이 시행되면 조만간 의사가 부당하게 피해보는 사례가 발생할 것"이라면서 "개원의 대부분이 조정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제이사는 "의료사고를 조사하는 감정부에 검사를 포함시킨다는 것은 결국 조사권이 아니라 수사권을 주는 것과 같다"면서 "의사의 진료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했다.
"의료분쟁조정법, 의사에게만 불리한 조항"
이와 관련해 개원의들은 "의료계 숙원사업으로 기대를 모았는데 오히려 의사의 발목을 잡는 법이 되고 있다"면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의료분쟁조정법 제37조 조정절차 중 합의와 관련해 조정신청을 하고 조정절차를 진행하는 중에도 피신청인인 해당 병의원장과 합의를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의료기관이 환자의 협박에 시달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의미에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조정이 진행되면 조정중재원에게 맡겨야 하는데 합의가 가능하다는 얘기는 조정 중에도 환자가 의료기관을 수시로 방문하며 진료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게 개원의들의 지적이다.
또한 의료분쟁조정법 제38조 감정서 등의 열람 및 복사와 관련한 조항에서도 조정 신청인은 감정서, 조정결정서, 조정조서 등 감정에 대한 기록을 열람 및 복사할 수 있도록 하자 향후 민형사 소송으로 넘어갔을 때 자칫 의료기관에 불리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령 악의적인 환자의 경우 일단 조정을 신청해 필요한 자료를 얻은 후, 민형사 소송에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의료분쟁조정법 제53조 벌칙조항 중 조정 진행과정에서 환자의 자료 열람 및 복사에 대해 이유 없이 거부하면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명시한 내용 또한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사에게 불리한 법" vs "실리를 생각해야"
반면 의사협회는 개원의들과는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복지부와 의견 조정에 나서고 있는 의사협회 관계자는 최근 열린 각과 개원의협의회 법제이사 연석회의에서 의료분쟁조정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점에 대해 설득했지만, 각과 법제이사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의사협회 관계자는 "법안을 부분적으로 보면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따져보면 실보다는 득이 많다"면서 "특히 산부인과는 무과실 보상으로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향후 수가인상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입증책임이 의사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이를 조정중재원에서 해결해 준다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라면서 "민·형사 소송으로 가면 변호사 선임비용 이외에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감안하면 실리가 많은 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립추진단 관계자는 "지난 19일 첫 회의에 이어 2차 회의에서는 대상을 확대해 의료계 의견수렴 절차를 거칠 예정"이라면서 "최대한 의료계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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