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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왜 하십니까?" "의사회 임원은 해야 합니다"

안창욱
발행날짜: 2012-01-10 06:27:55

이지영상의학과 이창석 원장, 늑장 심판결정 관행에 맞서다

부작위 위법확인 소송이라는 게 있다. 부작위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행정청이 규범적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소를 제기하는 게 부작위 위법확인 소송이다.

행정청의 부작위를 감히(?) 문제 삼아 행정소송을 제기한 의사. 광명시에서 개원중인 이지영상의학과의원 이창석(43) 원장이 주인공이다.

사건은 201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원장은 5명의 환자에게 3D CT를 촬영하고, 심평원에 검사비용 심사를 청구했더니 2D 비용만 인정하고, 나머지 비용을 삭감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런 삭감은 있을 수 없는 불법"이라고 선을 그었다.

요양급여기준 상 CT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비용 전액을 삭감할 수 있어도 2D, 3D 중 어떤 장비로 촬영하라는 기준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3D 요양급여비용 중 2D만큼만 인정하는 것 자체가 심평원의 자의적 삭감이라는 게 원장의 지적이다.

그는 "3D로 찍었는데 심평원이 2D 비용만 주면 그런가 보다 여기는데 익숙해 있다"면서 "이의신청을 해도 3D는 과하다고 판단해 2D 비용만 인정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100원을 줘야 하지만 그냥 80원만 받으라는 식이다.

그 역시 다른 의사들이 그랬듯이 심평원 이의신청이 기각됐다.

그러자 이 원장은 그해 8월 6일 복지부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에 보험급여비용 조정처분 취소청구(이하 심판청구)라는 행정심판을 신청했다.

건강보험법 시행령 제53조 2 제1항에 따르면 분쟁조정위는 심판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결정을 해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면 30일의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늦어도 90일 안에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분쟁조정위는 90일이 지나도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

이 원장은 심판청구를 한지 거의 1년이 될 무렵인 2011년 7월 27일 서울행정법원에 부작위 위법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 원장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더라도 90일 이내에는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 기간을 도과해 결정을 지연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의사들이 분쟁조정위 결정을 지켜본 뒤 행정소송을 하려고 해도 계속 늦어지니까 지쳐서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길게는 5년, 평균 500일 도과해서야"

2010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5년간 접수된 심판청구건은 총 4만 1412건. 이중 3만 3359건(80.6%)만 처리됐고, 나머지는 수년째 계류중이다. 행정심판이 내려졌다고 해서 법정 시한 안에 처리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길게는 5년 이상, 평균 500일을 기다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희안한 일이 벌어졌다. 그가 7월 27일 소장을 접수한 직후인 8월 5일 '7월 20일 심판청구에 대해 기각결정이 내려졌다'는 결정서가 등기우편으로 날라왔다.

무언가 미심쩍은 냄새가 났다. 소를 청구하기 이전에 심판청구에 대한 결정이 내려진 것처럼 서류를 꾸민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지만 접어두기로 했다.

어쨌던 그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재판부는 소를 취하하라고 권고했다. 기각 결정이 내려진 마당에 소를 제기한 것은 법률상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판결을 받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변론기일에 나홀로 출석했다.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소송에 임한 때문이다.

그는 "변론할 내용을 달달 외워 법원에 갔더니 판사께서 기회를 주지 않고 그냥 끝내려고 하더라"면서 "그래서 변론하겠다고 우긴 끝에 할 말을 다 하고 왔다"고 껄껄 웃었다.

이어 그는 "제가 일어나 변론 하니까 재판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라"면서 "그래도 끝까지 다 들어준 재판부가 고맙더라"고 소개했다.

결국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1일 각하 판결을 선고했다.

분쟁조정위가 결정서를 발송함에 따라 부작위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90일 이내에 심판청구건을 의결하도록 한 것은 훈시규정에 불과할 뿐 강행규정이 아니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와 함께 분쟁조정위가 심판청구 결정기간을 도과한 것은 사건 급증에 따른 것이어서 특별한 사정도 있어 보인다고 재판부는 판시했다.

이 원장은 "각하 결정이 내려질 줄 알았지만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고 싶었다"고 환기시켰다.

행정청을 상대로 부작위 위법확인 소송을 해서 승소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긴다고 해서 실익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송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단지 행정청의 관행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대한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 직을 수행했다. 최근 안창수 회장이 취임한 뒤로는 총무이사를 맡고 있다.

기자가 물었다. "만약 평범한 의사로 살았더라도 이런 소송을 했을까요?"

"의사회 임원을 맡지 않았다면 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임원, 그것도 보험이사라면 해야 한다." 그는 단호했다.

"보험이사가 그냥 덮어두면 누가 회원들에게 도움 주나"

왜냐고 물었다. 그는 "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 임원을 맡고 있으면서 자기 것은 덮어둔 채 회원들에게 '불합리한 보험기준은 원칙에 입각해 분연히 일어나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보험이사가 잘못된 처분을 받고 그냥 넘어가면 누가 회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면서 "그나마 이런 경험이 있으니까 상담도 해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창석 원장은 이 사건 이외에도 자동차보험과 관련해 보험사,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위원회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 등을 제기해 10여차례 전승을 거둔 바 있다.

이런 경험이 있다보니 회원들이 보험사로부터 받지 못한 미수금 문제도 도맡아 처리할 수 있었다.

기자와 인터뷰 중에도 몇몇 의사들이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요청했고, 그는 친절하게 안내했다.

그는 "그냥 참고 있으면 연체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이런 식으로 대응해야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동차보험만 놓고 보더라도 10% 삭감이 관행화돼 있는데 이런 게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 그냥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부터 문제제기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의 다음 상대는 심평원이다. 이미 1년치 이의신청을 모아두고, 소장 작성에 들어간 상태다.

이창석 원장은 "의사와 공단, 심평원이 암묵적인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당하게 진료비를 청구하고, 삭감되면 당당하게 법에 호소해야 건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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