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병원 원외처방약제비 소송에서 해당 판사가 진료비 채권의 소멸시효 등을 판단하는 등 기존 판례와 다른 점이 적지 않아 의료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송명호 판사는 사건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심평원을 방문, 현장검증에 나서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임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오전 10시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법정 404호실. 강원대병원 원외처방약제비 소송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는 날이었다.
사실 강원대병원 사건을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강원대병원과 대동소이한 원외처방약제비 소송을 청구한 의료기관들이 매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판결이 선고되자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법원은 공단이 진료비에서 상계처리한 9985만원 중 8577만원(86%)을 강원대병원에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판결 내용에서도 이전 판례와 다른 점이 적지 않았다.
법원은 공단이 강원대병원으로부터 환자 본인부담금 2341만여원까지 환수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강원대병원이 공단에 대해 가지는 채권은 진료비채권이지, 부당이득반환채권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따라서 강원대병원이 소송을 제기한 2008년 5월 13일부터 3년 전인 2005년 5월 12일 이전에 발생한 병원의 진료비채권은 일응 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공단이 2003년 3월부터 2005년 5월 11일까지 환수한 4827만원의 경우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이어서 병원에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 판례와 달리 요양급여기준의 강행규정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요양급여기준은 공단 입장에서는 요양기관에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의료행위를 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환기시켰다.
다만 법원은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처방전에 따른 약제비 손해를 의사가 공단에게 배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할 뿐 이러한 문제 영역에서 요양급여기준 강행법규성 유무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고법이 서울대병원 판결에서 요양급여기준은 강행법규이기 때문에 이를 위반한 원외처방 진료비를 공단이 환수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의사들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입증할 책임도 공단에 있다고 법원은 결론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에 대해서는 병원의 손해배상책임이 일응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기존 판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병원의 책임을 50%로 제한한 점이다.
법원은 병원 책임을 제한한 이유로 두가지를 제시했다.
법원은 "요양급여기준에 맞는 처방이 경제적이고 비용효과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환자를 치료하는데 최선임을 담보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법원은 기준 위반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문제는 의약분업이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파행적으로 운영되면서 도출된 것인 만큼 의사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의사의 처방전에 표시된 의약품이 병용금기나 특정 연령대 금지 성분이면 약사가 조제해선 안되지만 실제로는 조제하고 있는 실정이며, 여기에 대해 심평원이나 공단은 약사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2005년 5월 12일부터 2008년 5월 13까지 공단이 환수한 2816만원의 50%를 강원대병원에 환급해 줄 의무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전의 판례는 강원대병원 것과 크게 다르다.
지난해 5월 서울서부지법 민사 13부는 공단이 서울아산병원으로부터 환수한 27억 9479만원 중 6억 529만원(22%)만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연대 세브란스병원, 명지병원, 울산대병원, 한양대병원 등에도 유사한 판결이 내려졌다.
의료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 어긋나는 원외처방전을 발행한 것은 위법행위이며, 공단에 손해를 가한 것이어서 환수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공단이 환자 본인부담금까지 환수한 것은 위법이며, 전체 환수액의 20% 상당을 병원 측에 돌려주라고 선고한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원외처방약제비 소송의 시초격인 이원석 원장과 서울대병원의 판결은 더 참담했다.
이들은 1심에서 완승을 거뒀다.
2008년 8월 서울서부지법은 공단이 서울대병원으로부터 환수한 41억원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41억원 중 18만 6710원만 서울대병원에 돌려주라며 1심을 뒤집었다.
의료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이에 어긋나는 원외처방을 했다면 의학적 근거와 임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정당행위를 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성이 인정된다는 게 판결의 핵심이다.
"송명호 판사 열의 인상적이었다"
강원대병원 사건이 주목받는 또다른 이유는 송명호 판사의 남 다른 행보 때문이다.
송 판사는 강원대병원 사건을 맡으면서 서울고법 판결에 구애받지 않고 제대로 심리하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그는 진료비 청구 및 심사 시스템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이례적으로 심평원을 방문해 현장검증에 나섰다.
이 자리에는 민법을 전공한 교수들도 동행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판사들이 건축물 하자나 대형 사고 등의 사건을 배당 받은 후 현장검증에 나서기도 하지만 흔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특별기일을 잡아 민법 전공 교수, 공단, 심평원, 병원 측 대리인들의 주장을 모두 청취하는 열성을 보였다.
판사 개인의 편견을 없애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노력이다.
강원대병원 대리인인 현두륜(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22일 "판결 내용을 떠나 의욕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현 변호사는 "사건 당사자 입장에서 볼 때 기존의 판례와 재판 관행에 따르면 억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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