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체 위탁, 수탁기관들이 관행적으로 유지해오던 할인행위의 고리를 끊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실타래가 최근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열린 '검체검사 위탁제도 개선을 위한 4차 회의'에서 풀렸다.
일부 반대 의견도 나왔지만 위탁제도를 바꿔보자는 대의명분에 따라 한발 양보하면서 결론을 냈다. 가까스로 도출된 이번 결론은 앞으로 위수탁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EDI 직접청구의 의미
이번에 도출된 병리진단검사 위수탁제도 개선안의 가장 큰 변화는 수탁기관의 EDI 직접청구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현행 건강보험법 중 '검체검사 위탁에 관한 기준'에서 위탁검사관리료(10%)를 제외한 검체검사료(100%)는 수탁기관으로 직접 지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수탁기관에서 통보한 검체검사 공급내역과 위탁기관의 위탁검사 청구내역을 대조 심사해 허위 및 오류가 없는지 살피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모든 대금결제가 위탁기관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수탁기관은 검사내역서를 제출할 수 있는 창구가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건강보험법에 명시한 기준에는 있지만 법이 사문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위탁검사료가 시장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된 것이다.
위탁검사료의 극심한 할인경쟁의 원인에는 정부의 관리 소홀도 한 몫 해왔다.
가령, 지금까지는 수탁기관에서 A라는 검사를 실시했음에도 위탁기관이 임의로 B라는 검사를 실시했다고 청구해 수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복지부가 고시를 통해 수탁기관의 검사내역서를 제출하도록 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병리과학회 이건국 총무이사는 "앞으로 수탁검사기관이 검사를 실시한 대로 수가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성과"라면서 "건강보험법상에는 명시돼 있었지만 사문화된 것을 이번 기회에 근거 고시를 만들어 이를 현실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 또한 "그동안 검사료 지급 구조가 잘못됐던 부분이 있어 이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면서 "과도한 할인행위는 검사의 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 국민들이 정확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고 전했다.
■진단검사 70%, 병리검사 100% 왜 다른가
이번 회의 결과에 따르면 진단검사 및 핵의학검사와 병리검사의 검사료 지급 기준을 달리했다.
진단검사 및 핵의학검사 수탁기관에 검사료 70%를, 위탁기관에는 위탁검사관리료 40%를 각각 지급하는 반면 병리검사는 수탁기관에 검사료 100%, 위탁기관에 위탁검사관리료 10%를 지급하기로 한 것.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진단검사 및 핵의학검사는 검사장비의 자동화로 인해 검사 절차가 다소 용이해진 반면 병리검사는 의료진이 각각의 검체를 현미경으로 확인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적극 고려됐다.
가령, 장비를 통해 하루에 수백개의 검사를 실시할 수 있는 소변검사와 의사가 하루 종일 해도 수십개를 채우기도 벅찬 세포진검사에 대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
복지부 관계자는 "병리검사에 대해서는 의사들의 행위를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해 진단검사와 차이를 둬야한다고 생각했고, 회의에 참석한 다수가 이에 찬성했다"고 전했다.
■위탁제도 논의 어떻게 시작됐나
위수탁기관의 지나친 할인행위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난 2010년 병리수가 인하 고시 발표에서 시작됐다.
정부가 병리수가를 인하하겠다고 발표하자 병리과 개원의들이 이에 반대하며 현실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병리과학회는 이 때부터 왜곡된 위수탁거래 실상을 복지부에 알렸지만 정부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던 중 본지가 위수탁검사의 무리한 할인행위에 대해 기획기사를 연재한 데 이어 이와 같은 내용이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면서 논의에 불이 붙었다.
국감에서 지적된 이후 복지부는 논의를 구체화하기 시작, 지난 해 10월경 비공식적인 고시안을 만들고 관련 기관 및 학회와 협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EDI 직접청구에 대해 의사협회 등 의료단체가 반대하면서 논의는 미궁으로 빠지는 듯 했다.
이후 산부인과에서 EDI 직접청구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병리과학회와 찬반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 3월 7일 복지부가 마련한 4차 회의에서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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