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록은 현지조사에서 제출해야 할 서류범위에 포함된다."
"제출한 전자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 수기로 작성된 환자 본인부담금 수납 대장을 달라."
두 가지 주장 중 어떤 것이 맞을까. 결론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성실히 자료를 다 제출했지만 있지도 않은 '실제 장부'를 내놓으라는 압박을 받다가 결국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의료계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걸면 걸리는 끼워맞추기 식의 잣대를 통해
언제든 현지조사 과정에서 사형선고와 같은 업무정지 처분 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자료 제출의 적정성을 따져 물었다가 1년 업무정지 처분으로 결국 폐업한 분당 Y산부인과 등의 사례를 통해 현지조사의 문제와 합리적 개선점을 알아봤다.
"걸면 걸리는 자료제출 거부…기준이 없다"
분당 Y산부인과는 복지부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이 내려진지 불과 한달이 지난 11월, 결국 폐업 처리됐다.
1년의 업무정지 기간 동안 매달 35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와 30여명의 직원 인건비 등을 감당할 여력이 안됐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Y산부인과가 폐업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
복지부는 지난 2011년 9월 K원장의 병원을 현지조사하는 과정에서 진료기록부, 본인부담금 수납대장 등과 함께 전산기록 자료도 요구했다.
하지만 K원장은 요양기관 일반 현황, 인력 현황, 근무현황표 등 자료는 제출했지만
전산으로 기록된 진료기록은 제출하지 않았다 .
어차피 전산자료라고 해봤자 전자서명이 돼 있지 않아 법적인 효력이 없고, 환자의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의료법 위반의 소지마저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자 복지부 실사팀은 전자서명이 없어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도 없는
전산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의 업무정지 처분 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 광진구의
K산부인과가 겪은 일은 정반대 로 진행된다.
해당 기관은 서면 차트를 따로 사용하지 않아 전자차트의 모든 자료를 제출했지만 실사팀의 요구는 Y산부인과 경우와 달랐다.
실사팀은 "
전자차트 제출은 기록으로 인정하기 어려워 서면자료를 내지 않은 것은 자료 미제출 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K산부인과 역시 업무정지 1년의 사형선고를 받았다. 자료제출 거부에 따른 업무정지 처분이 자의적 해석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업무정지 처분, 실사팀의 자의적 해석에 의존"
K산부인과는 최근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하라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아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Y산부인과는 자료 제출의 적정성을 묻는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태에서 업무정지 처분을 받아 끝내 재판부의 결론을 보지 못한 채 폐업 조치됐다.
의료계는 업무정지 처분의 자의적 해석을 비판하고 있다.
K산부인과 원장은 "털어서 아무 것도 없으면 현지조사를 마쳐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아니라
무조건 건수를 잡겠다는 분위기 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현지조사 당시 급여총액, 본인부담금, 진료비, 비급여 등을 담은 외래 환자 자료를 서면으로 제출하고 모든 전산기록까지 넘겼다"면서 "그런데도 돌아온 대답은 숨겨놓은 '실제 장부'를 내놓지 않으면 업무정지를 내리겠다는 말뿐이었다"고 전했다.
Y산부인과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성실히 요구하는 자료를 다 제출했는데 전산기록 제출의 적정성을 따졌다는 이유로
1년간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는 게 과연 합당하냐 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법 98조는 현지조사를 거부한 요양기관에 대하여 "1년의 범위에서 기간을 정하여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안의 경중을 따져 기간을 나누지 않고 1년의 처분을 남발하는 것은 적정한 기준이 아닌 실사팀의 자의적 해석에 의한 '괘씸죄' 적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사팀-의료기관 분쟁, 객관적 절차 거쳐야"
이동욱 의협 의료분쟁저정법 특별위원은 복지부 처분에 대한 몇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위원은 "제출 요구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면 일방적으로 1년의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면서 "복지부에 의료단체 자문위원이 포함된
객관적인 중재기구를 둬 검증 절차 를 거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업무정지는 현지조사 공무원의 즉흥적 판단이 아니라 복지부 심의위원회를 거치게 해야 한다"면서 "
사안의 경중에 따라 1년 범위 안에서 업무정지 기간이 적절히 정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환기시켰다.
1년 업무정지 처분이 사실상 개원의에게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만큼 처분의 합리성과 균형성이 검증되는 요건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
이 위원은 "현재 요양기관 업무정지나 의사 면허정지 처분이 1차 의료기관에 편중돼 있지만 과연 종별 건보재정 사용액에 따라 형평성있게 처벌하는지는 의문"이라면서 "3차의료기관은 단 한차례도 업무정지가 없었던 것만 봐도 이는 잘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인 면허정지, 업무정지를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후에야 시행해야 한다"면서 "만일 Y산부인과가 대법원에서 승소한다고 해도 이미 폐업한 상태라 아무 것도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승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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