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대에 이어 제39대에서도 역시 추무진 후보가 웃었다. 2위와 불과 66표 차의 힘겨운 승리였지만, 재선 도전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징크스를 깬 첫 직선 회장으로 기록됐다.
추 당선인이 '안정 속의 혁신'을 기치로 내걸었던 만큼 회원들은 급진적인 혁명보다는 의료계 내부의 안정을 우선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추무진의 재선 성공이 가진 선거사적 의미와 향후 의-정 관계의 정립, 선거가 남긴 과제와 전망 등을 정리했다.
회원들, 급진적 개혁보다 온건한 혁신 선택
20일 대한의사협회 선거관리위원회는 오후 7시부터 의협 회관 3층에서 선거 개표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추무진-임수흠-조인성 후보는 각각 최종 득표 3285표, 3219표, 3139표로 초 박빙 접전을 벌였지만 회원들의 선택은 결국 협회의 안정으로 수렴됐다.
추 당선인과 같이 진보로 분류되는 이용민, 송후빈 후보는 각각 '한 판 뒤집기'와 '의협 혁명'을 내걸고 급진적인 노선을 드러낸 바 있다.
반면 제37대 집행부에서 노환규 전 회장과 대의원회 사이에서 촉발된 갈등과 반목, 내분을 경험했던 회원들은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안정 속의 혁신 쪽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판단된다.
대정부 투쟁을 기치로 내건 이용민 후보나 사원총회 추진으로 급진적인 내부 혁명을 내건 송후빈 후보의 당선시 내부 안정보다는 불가피한 갈등과 성장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결코 바꾸지 않는다"는 추 당선인의 호소도 먹힌 것으로 분석된다.
그간 '현직 프리미엄'을 믿고 제32대 신상진 회장이, 제36대 주수호 회장이 재선에 도전했지만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회무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 유권자들의 선택은 늘 '뉴 페이스'였다.
그런 의미에서 추무진 후보의 재선 성공은 '재선 도전은 항상 실패'라는 의협 선거의 징크스를 깬 동시에, 보궐선거 당선 이후 10개월간 안정적 회무를 펼쳤다는 신임을 얻은 셈이다.
추무진 당선인, 자력으로 존재 가치 입증
노환규 전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만큼 추무진 회장에게는 늘 '대타 회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제 그 꼬리표를 뗐다. 그것도 자력으로.
이번 선거에서 추무진 후보는 회무와 선거운동의 병행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선거운동 대신 회무에 집중하는 역발상의 전략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추 후보는 그간 현직 회장과 의협 회장 후보라는 두 가지 역할 갈등 때문에 변변찮은 선거캠프의 구성은 커녕, 제대로 선거운동에 뛰어들지도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노환규 전 회장은 보궐선거 때와는 달리 이번 선거에서추무진 회장의 저격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노 전 회장은 추 후보를 겨냥해 "대의원회 개혁을 갈망했던 저와 회원들의 열망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대의원들로부터 비대위원장직을 하사받은 것을 기뻐했다"며 "이번 선거에서 회원들의 냉정한 심판이 기다릴 것이다"고 경고했지만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추무진 후보가 노 전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제39대 의협 집행부에 당당히 입성한 만큼 '대타 회장'이라는 꼬리표는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다.
당선증을 받은 추무진 당선자(오른쪽)
추 후보는 선거운동 당시 "의협 회장과 회장 후보라는 두 가지 역할 때문에 선거운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며 "다만 재선에 성공한다면 돈을 쓰지 않고 조직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고 강조한 바 있다.
화려한 선거운동 없이 회무만 열심히해도 결국 회원들이 알아준다는 것이 당선자의 판단.
다만 낮은 투표율은 여전히 대표성에 걸림돌로 남았다. 이번 투표에서 전체 유권자 4만 4414명 중 31.02%만 참여해 그중 3285명만이 추 후보를 선택했다. 대내외적으로 의협이 자랑하던 전체 11만명의 회원에 비하면 대표성을 띠기에는 턱없이 궁색한 수치다.
초 박빙 승부를 펼친 임수흠, 조인성 후보와는 각각 66표, 146표 차이에 불과하다. 추무진 후보가 압도적이었다기 보다 타 후보의 '한 끗'이 부족했다.
원격의료, 규제 기요틴 등 줄줄이 남은 시험대
"안정 속의 혁신, 강한 의협을 이룰 기회를 주십시요."
추무진 후보가 기치로 내걸었던 이 문구 속에 향후 행보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다.
추무진 회장의 재선 성공으로 의-정의 관계가 급속도로 태세 전환을 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타 후보와 같이 '한방 퇴출'과 같은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지 않았다는 점에서 타 직능단체와의 관계도 급속도로 냉각될 가능성도 현재로선 낮다.
다만 제2차 의정 합의 이행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회원들의 신임을 얻은 이상 38대 집행부에서 완수하지 못한 의정 합의 이행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회원들이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진찰료 현실화 ▲초재진료 개선 ▲노인정액제 개선과 같은 성과물을 얻는 것이 '안정 속의 혁신'이라는 추 집행부의 기조와도 잘 맞기 때문이다.
한편 38대 집행부에서 여전히 불발로 남은 의협의 내부 혁신도 중점 회무 추진 사항으로 다뤄지게 된다.
추무진 후보는 줄곧 "39대 당선시 더 이상 혁신을 방행하는 어떤 세력과도 타협하지 않겠다"며 "더 강하게 혁신을 이뤄내고 젊은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협회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였던 38대에서는 대의원회와 마찰을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았던 반면, 협회의 안정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의협 내부 개혁을 미룰 이유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관 개정을 통한 회원투표제의 도입 역시 공약 중 하나.
이어 4월과 5월, 39대 임기 초반에 예정된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종료와 규제 기요틴의 추진 결과와 변동 사항도 추무진 호의 첫 시험무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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