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전체가 다시 뭉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단합 대신 분열만 확인했다.
특히 추무진 회장의 "의료일원화에 대한 회원들의 자신감 결여" 발언이 도화선이 돼 회장 사퇴 요구가 주를 이루면서 향후 대정부 투쟁을 위한 구체적인 '노하우' 수렴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13일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 및 범의료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이광래)는 의협 회관 3층에서 원격의료 추진 및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추진 등 잘못된 정책추진 철폐를 위한 범의료계 전체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토론회는 전국의사대표자 궐기대회 파행으로 인해 기획됐다. 비대위는 궐기대회 행사과정에서의 불상사를 거울삼아 회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의료계 전체가 다시 뭉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코자 대토론회를 기획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대토론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추무진 회장의 의지 결여를 이유로 사퇴를 촉구한 반면 집행부는 대정부 투쟁을 위한 노하우를 들려달라며 평행선을 달렸다.
회원들의 공세…김필건 회장 고발·의정협의체 탈퇴·의료일원화 중단
이날 토론회에는 노환규 전 의협 회장, 각 시도의사회 회장, 비대위 위원을 비롯 40여명이 참석했다. 궐기대회 파행의 장본인인 의료혁신투쟁위원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첫 논의 주제인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저지부터 질타가 이어졌다.
좌훈정 전 의협 감사는 "회원들이 한방 문제와 관련해서 분노하고 있는 정서를 알아야한다"며 "집행부가 열심히 했으나 역부족으로 잘 안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추 회장이 재선된지 1년 반이 지났지만 대응이 미흡하고 잘못된 의료일원화 추진 등으로 회원들이 화를 내고 있다"며 "김필건 한의사협회장의 현대의료기기 시연을 고발하지 않고 의료현안협의체 탈퇴도 하지 않아 회원들이 과연 집행부가 투쟁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대의원회는 의료일원화를 통한 기존 한의사의 의사면허 부여는 절대 안 된다고 의결했지만 집행부는 다른 방식의 일원화를 추진 중이다"며 "그래서 7000명 이상 회원이 의협회장 불신임을 주장한 것이다"고 꼬집었다.
당장 의료현안협의체 탈퇴와 함께 김필건 한의사협회장의 고발, 의료일원화를 통한 한의사 면허 부여 금지를 선언해 신뢰를 얻어야만 투쟁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문.
이에 이광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금의 모든 해결책이 투쟁이라는 단어로 귀결이 된다"며 "우리가 투쟁을 해서 성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못 얻을 수 있고, 각 단체마다 투쟁이 방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투쟁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적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동욱 평의사회 대표는 "투쟁 자체가 목적이 아닌데 집행부의 목적과 방향성이 잘못됐다"며 "목표를 세우고 방향성을 세운 이후에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 방법부터 찾자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추무진 회장은 "혈액검사기와 관련해 복지부에 항의방문도 했고, 일원화를 통한 한의사 면허 부여도 없으며 김필건 회장을 고발하지 않은 것 또한 법률적 해석에 의거한 것이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공세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한의사뿐 아니라 국민들도 의료일원화와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일원화는 시기상 미뤄둬야 한다"며 "집행부는 김필건 회장을 고발 안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지만 회원들은 배신감을 느낄 뿐이다"고 비판했다.
이광래 비대위원장은 "우리가 고발했다가 패소하면 한의사협회가 마치 골밀도기기 사용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할 수 있다"며 "회원들이 끝까지 고발을 주장한다면 비대위에서 하겠지만 향후 패소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에 이동욱 대표는 "이미 의료혁신투쟁위원회가 김필건 회장을 고발했기 때문에 무죄가 나와도 한의협은 똑같은 언론플레이를 할 것이다"며 "그렇기 때문에 회원들은 의협이 왜 고발에 참여하지 않는지 분노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발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집행부가 침묵하니 의혁투가 답답해서 한 것이다"며 "개인 회원이 아동청소년 보호법 헌법소원도 내고 전국의사총연합이 리베이트 쌍벌제 헌법소원을 하는데 의협은 강 건너 불구경하지 말고 탄원서를 내든 뭐든 행동을 하라"고 촉구했다.
사퇴 요구 도화선 된 '자신감 결여' 발언…집행부는 난감
토론 전개가 회원들의 회무 비판 이후 집행부의 해명으로 겉돌자 공세는 추무진 회장에게 집중됐다. 특히 추무진 회장의 "회원들이 의료일원화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김장일 경기도의사회 대의원회 부의장은 "한의학은 소멸돼 가는 학문이고 자연도태되도록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의협은 되레 의료일원화를 제안해 한의학을 대화파트너로 격상시켰다"며 "누가 과연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료일원화로 한방 현대의료기기를 저지할 수 있다는 전략을 짰는지 통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이필수 전라남도의사회장은 "회원들의 의료일원화 협의체 탈퇴 의견이 많다"며 회원 투표를 통해 가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추무진 회장은 "우리가 한의사와 통합을 할 때 회원들이 왜 이렇게 자신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의사는 10만 회원이고 한의사는 2만 명 정도에 불과해 흡수통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신감도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동욱 대표는 "왜 회원들이 자신감이 없냐고 하는데 한국 의사면허하고 아프리카 의사면허하고 통합하자고 하면 이건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다"며 "자격이 안 되는 사람하고 통합을 어떻게 하냐를 따지는데 자신감을 이야기 한 것은 망언이다"고 꼬집었다.
추무진 회장은 자신감 결여 발언을 취소했지만 불붙은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김장일 부의장은 "의협의 수장이자 리더가 자신감이 없다는 식으로 회원 탓을 하면 안 된다"며 "그건 자격이 없는 것으로 회장이라면 리더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격의료나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 모두 2000년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노력 그 이상을 보여야한다"며 "회원들이 다 각자도생을 외치면서 무기력하게 땅만 쳐다보는 상황에서 회장이 겁을 내고 있으니 무슨 투쟁 방안을 내겠냐"고 비판했다.
좌훈정 전 감사는 "불과 2년 전에 파업을 했지만 지금은 회장이 싸울 의지가 안 보이니까 파업을 못한다"며 "2007년 전 정부가 의료법 개정을 시도하자 장동익 집행부가 의료법 개정안 국회 상정시 총 사퇴하겠다고 한 것처럼 원격의료 상정되면 집행부가 총 사퇴하겠다고 선언해 달라"고 촉구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거들었다. 그는 "의료일원화와 관련해 의료계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교육의 흡수통합인데 추무진 회장은 면허의 흡수통합을 거론, 회원들의 자신감이 없다고 말했다"며 "회원들이 자신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 상황을 회원들이 정확히 알도록 알리고 함께 대책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숙희 의협 부회장과 김봉천 대전시의사회 기획이사는 각각 "투쟁 방법론을 듣고 싶은 자리였고 구체적인 노하우를 듣고 싶은 자리였다"며 "이 자리가 회장의 진퇴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사퇴 요구는 계속 이어졌다.
이동욱 대표는 "과거 우리가 투쟁해서 이긴 적이 없다고 회장, 비대위원장이 그렇게 자신없는 모습을 보이니 굉장히 실망스럽다"며 "그러면 이런 논의가 다 필요없는 것이고 그냥 정부 노예로 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추무진 회장은 "더 강력히 대외적인 회무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며 "제 뒤에 이런 회원들 뜻이 있다는 것을 알려지면 더 큰 목소리 낼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밝혔다.
그는 "모든 상임위 회의 내용을 모든 회원에게 알릴 수 없는 구조를 양해해 달라"며 "홍보 문제는 다시 한번 고민해 보고, 지적하신 회장의 의지 문제를 통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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