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병원 입원전담전문의 이재현 교수(85년생)는 오프일 때 22개월된 딸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함께 책도 읽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입원전담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누릴 수 없는 시간들이다.
# 서울대병원 입원전담전문의 한승준 교수(82년생)는 오프일 때마다 6세, 4세 자녀의 유치원, 어린이집 등·하원을 맡는다. 맞벌이로 바쁜 아내를 위해 아이들 소풍 가는날에는 김밥을 직접 싸서 예쁜 도시락을 만들어 보낸다. 그 또한 기존의 세부전문의로 전임의 트랙을 갔다면 생각할 수 없는 소소한 일상이다.
# 서울대병원 입원전담전문의 이현정 교수(86년생)는 오프에 맞춰 여행을 다녀왔다. 전공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볼륨댄스도 배웠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과 시간을 보내며 차분히 결혼준비 중이다.
지난 3월 근무를 시작한 서울대병원 입원전담전문의 5명은 주간 2주, 야간 1주, 오프 2주(15일) 근무 시스템으로 장기간 오프가 주어지면서 라이프스타일에 상당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사실, 당초 지원했을 당시만 해도 정원 5명을 확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2주간 오프를 기대할 수 없었다. 다행히 입원전담의 5명이 확보되면서 '긴 휴일'이라는 덤이 생겼다.
이재현 교수는 "지난해 펠로우 때에는 새벽에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다보니 아이가 엄마인 저를 낯설어 했다. 저한테 잘 안기려고 하지도 않았죠.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며 미소를 지었다.
◇입원전담전문의 정착되면 병원 시스템 변화 가능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온 것 이외에도 기존 병원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상당수 교수의 수면시간은 4시간 안팎으로 새벽에 출근해서 밤 11시~12시까지 연구실을 지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주니어 스텝의 업무 강도는 전공의 몫지 않은 수준.
또한 대부분의 교수가 새벽이나 주말에도 수시로 응급환자 콜을 받고 필요한 경우 병원으로 출근을 하고 일부 교수 중에는 과장급임에도 평일 밤 11시까지 연구실 불을 밝히고 있다.
병동환자 회진에 외래진료, 수술 스케줄을 소화하고 연구논문까지 준비하려면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병원 내에서 보직까지 맡은 교수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달리 말하면, 병동 내 환자를 챙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혜림 교수는 교수들가 외래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입원환자 케어는 입원전담전문의가 맡는 것이 윈윈전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학병원 교수들의 업무 로딩은 기형적일 정도로 과부하 상태다. 입원환자까지 감당하는 것은 무리다. 언제까지 교수를 쥐어짤 수 있겠나. 필요한 경우에 세부전문의와 협진하고, 입원환자 케어는 입원전담의가 전담해야 한다."
또한 한승준 교수는 병동 회진에 대한 요양급여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며 입원전담전문의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교수들의 회진은 정부에선 수가조차 제대로 책정돼 있지 않아 무료 의료서비스인 셈이다. 언제까지 이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겠나.
입원환자 진료에 대한 수가를 제대로 받는 입원전담의가 입원환자를 맡아 충분히 시간을 할애, 환자를 진료하는 게 맞다고 본다."
◇입원 환자 케어, 이 분야 만큼은 우리가 전문가
서울대병원 입원전담의 6개월차. 이들은 몇년 후 입원환자 만큼은 어떤 세부전문의 보다 전문성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병동환자 케어에 대한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후배 양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현 교수는 "사실 전공의 시절 다양한 수련을 받지만 병동환자 케어에 대해선 특별한 수련이 없는데 그 공백을 우리가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혜림 교수도 "입원환자에 대한 교육 및 수련에 대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후배양성은 입원전담의에 대한 직업적 만족감 또한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준 교수는 병동 내 의사와 환자의 관계, 환자 및 보호자와의 면담법, 병상에서 신체검진(진찰)하는 법 등 노하우를 교육하면 저년차 전공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하 교수는 이르면 내년부터도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중요한 것은 향후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입원전담전문의 조직이 좀더 커질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의학 이외 환자, 보호자 마음 달래줄 수 있어야 '입원전담의'
또한 이들은 기존 의료시스템에서 의사가 보여줄 수 없던 새로운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입원전담의는 병동 내 24시간 상주하며 환자 및 보호자와 수시로 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의사와 환자간 남다른 라포를 형성한다.
한 교수는 얼마 전 암말기 환자의 보호자와 면담을 했다. 현재 환자의 상태는 어떻고 앞으로 얼마나 생존 가능한 것인지 등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다 보니 어느새 한시간이 훌쩍 지났다.
환자의 치료법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가정환경부터 직장상황 등 환자 보호자의 고민을 마주하다 보면 의학적인 영역을 넘어 그들의 경제적, 정신적 상담으로 이어졌다.
1천만원 짜리 고가약을 쓸 수 없는 형편 때문에 자과감에 빠진 보호자들에게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저가약을 제시해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문성도 교수는 간암 말기의 어머니를 둔 딸과 면담을 한 끝에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대신 가족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 모녀의 여행을 도왔다.
비행기 탑승이 가능하도록 의사소견서와 함께 산소처방전을 발급해주고 먹고 싶었던 음식도 모두 먹어도 좋다며 그들의 여행을 응원했다.
그는 만약 전공의라면 교수와의 의견이 달라질 수 있어 조심스럽겠지만 내 환자라는 생각에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치료과정에서 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비의학적인 측면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면담을 원하고, 또 필요한 부분이지만 모든 의사들이 시간에 쫒겨 할 수 없었다. 병동에 365일, 24시간 지키는 입원전담전문의는 가능하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역할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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