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모자라 간호조무사협회까지 근로환경 자료를 달라고 한다. 근로계약서, 최저임금 준수 여부 등을 본다고 한다. 불안병에 걸릴 지경이다."
최근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일선 의료기관에 발송한 '근로조건 자율개선 지원 사업 대상 사업장 선정' 공문을 받은 서울 한 개원의사의 토로다.
16일 개원가에 따르면 간무협은 최근 근로조건 자율개선 지원사업단으로 선정돼 일선 의료기관에 관련 공문을 배포했다.
근로조건 자율개선 지원 사업은 노무 전문가가 사업장을 찾아 법령 안내 및 지도를 실시해 사업장이 자율적으로 미비점을 개선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방문해 점검하고 징계까지 하는 과정이 있기 전 미리 위법인 부분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처음으로 병의원 분야를 사업에 추가했고, 간무협을 위탁기관으로 선정했다. 100명의 노무사가 자율개선지원사업 대상 기관을 찾아 법률 위반 사항을 점검, 지도한다.
지도점검 내용은 근로계약,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최저)임금, 모성보호, 직장내 성희롱, 취업규칙 등이다.
개원의는 공인노무사가 방문하기로 한 날짜에 맞춰 9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근로자명부, 근로계약서, 취업규칙 등 사규 ▲임금대장 및 출근부 ▲사직서, 퇴직금 산정내역 및 지급증빙 서류 ▲모집, 승진 및 징계 관련 자료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자료, 교육 일지, 참석자 명단 등 이다.
간무협 관계자는 "자율개선 목표 의원 수는 500개인데 사업 참여 자체가 자율이기 때문에 두 배 수인 1000곳을 무작위로 선정해 우편으로 공문을 발송했다"며 "징계성 사업이 아니고 사전에 계몽하고 자율적으로 점검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사유 없이 자율개선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숫자가 많으면 고용노동부 입장에서는 노동법 위반 의심 대상이 많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럼 근로조건 점검 대상 사업장을 지정돼 근로감독관이 직접 점검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공문을 받아든 개원가는 말로는 자율이라고 하지만 강제성이 다분하다며 부담감을 표출하고 있다.
서울 A내과 원장은 "자율개선이라고 해도 거부하면 정부에서 나올 수 있다고 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며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아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털어놨다.
"근로 관계에서 가장 필수적인 게 근로계약서"
노무 전문가는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컨설팅을 통해 대비책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하고 있다.
노무법인 유엔(U&) 임종호 노무사는 "노동부에 있는 근로감독관이 전국에 총 1200명 있는데, 이들이 수십만개 사업장을 관리 감독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자율개선 사업을 하는 것"이라며 "관리 감독을 거절해도 파견 노무사가 노동부에 명단을 통보할 것이기 때문에 선뜻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원은 5인 미만이 많은데 노동법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곳도 많이 없다"며 "근로 관계에서 가장 필수적인 게 근로계약서인데 안 쓰고 있는 곳도 상당히 많고, 주말 출근 수당 문제 등도 미비한 곳이 상당수이다 보니 공문을 받고서도 우왕좌왕하는 분위기"라고 현실을 말했다.
'노동 존중'이라는 현 정부 기조를 봤을 때는 노동법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도 했다.
그는 "규제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 모든 사업장이 노동법을 지켜야 하고 새 정부 정책이 노동부 존중 사회를 구현한다는 방향인 만큼 합법적인 방향을 고민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법을 잘 몰라서 빚어진 일이라면 컨설팅을 받는 것도 도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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