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에서 눈이 먼다는 것보다 더 참혹한 인생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새하얀 달과 함께 서 있는 어딘가 애조(哀調)를 띤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스페인의 남부지방 안달루시아에 있는 고도(古都)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대해 설명할 때는 으레 최상급 표현이 동원된다.
"알함브라 궁전은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예술적 창조물의 하나이다. 알함브라의 요새는 가장 놀라운 건축물의 하나이고 궁전은 지금 세계에서 현존하는 아랍 궁전중 최고이다. 낙원(樂園)과 흐르는 물을 결합시킨 설계는 코란의 에덴동산을 구현한 것으로 이런 곳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고 미쉐린 가이드 북에 적혀 있기도 하다.
나의 소원 중의 하나가 부모님과 함께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정말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고 팔십을 목전에 두신 아버지와 일흔을 넘긴 어머니를 모시고, 여름 휴가를 그라나다로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당시 대상포진을 앓고 있었다. 가야하는 여행일까 고민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밤 열두시에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터키 공항을 경유하고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서 또 세시간을 기다렸다가 또 세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27시간만에 그라나다에 도착하였다.
'내 욕심이 너무 컸구나' 라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내가 대상포진에 걸려서 아프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부모님을 좀더 세심하게 챙겨드릴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저녁을 트렁크에 있던 음식들로 대충 때우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먹기위해 부모님 방으로 갔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랑 이제 밥먹으러 가야지"라고 어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어머니와 한참을 이야기를 했는데도 아버지는 일어나실 기색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아빠, 아침 식사하시러 가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빠, 배고프실 텐데 식사하시러 가야지요." 이번에도 답이 없으셨다. 나는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게로 다가가서 이불을 들추었다. 아! 아버지는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셨다. 얼굴에도 약간 파란 기운이 도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머리 속이 하얘졌다. '머나먼 타국에서, 어떡하지…나 때문에 아버지가, 불쌍한 우리 아버지가'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한 번만 더 깨워보고 안되면 chest compression 을 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지?'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도, 동생도 사색이 되어있었다. 나는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제발 좀 일어나봐…" 그 때 정말 다행히 아버지는 작은 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눈을 떴고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일어나 앉히고 물을 좀 먹이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몸은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말은 어눌했다. 말이 어눌하니 당연히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은 어디를 가니? 얼른 구경가야지…" 아버지는 이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하실 수가 없었다. 자꾸만 넘어지는 아버지를 겨우 부축해서 병원으로 가야 했다.
호텔 주인의 도움으로 우리는 구급차도 아닌 택시를 불러서 그라나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라나다 병원에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 낯선, 동양인을 모두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라나다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였고 우리에게는 구글 번역기가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식 아니 그라나다 식으로 부르는 아버지 이름 석자를 듣는 일도 너무 어려웠다. 몇 번을 혹시 이름을 불렀냐고 확인을 해야 했다. 응급실 접수 2시간 반 만에 의사를 만나고 또 2시간만에 약 처방을 받고 또 2시간 만에 혈액 검사 확인을 하고 퇴원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버지의 증상은 조금씩 좋아져서 호텔로 돌아올 때는 똑바로 서실 수가 있었다. 지금은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밤에 주무실 때 숨을 잘 쉬시는지 걱정이 되어 어머니께서 잠을 못 이루시긴 한다. 숨을 잘 쉬고, 스스로 식사를 하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느꼈던 순간이었다.
이번 일을 겪기 전에는 나는 오롯이 의료인의 입장에서만 서서 환자를 치료 하고 보호자를 대면했던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환자분 나이를 생각하면 치료가 어려우시겠습니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았고,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아도,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이렇게 될 때까지…' 이런 생각도 했었다. 밤에 울리는 CPR 방송이 의료인에게 전해지는 것보다 보호자에게 몇 십배는 아니 몇 백배는 더 아픔으로 다가올 거라는 것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라틴어에 Usus est magister optimus(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 )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을 뻔 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의사였는지 느꼈다. 이 세상에 한 분 뿐인 어머니이고, 아버지이고, 자식일 텐데, 그 귀중한 존재 앞에서 나는 너무나 경솔한 태도를 가졌던 것이었구나 하는 후회가 물밀듯이 다가왔다.
그분들에게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또 다른 하루에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어떻게 내가 알 수 있을 것인가? 중환자실에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환자분들에게 혹은 가족분들에게 다른 단어로 말씀드리기로 했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텨 보겠습니다. 환자분께서 잘 이겨 내 주실 겁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아름답다고 해서 꿈에서라도 보고싶었던 알함브라 궁전을 이번 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다. 궁전은 보지 못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지금의 알람브라를 있게 한 Washington Irving의 Tales of the Alhambra에는 알람브라에서 톨레도까지 이어지는 여행과, 신비로운 사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스페인 사람들의 상상력은 고달픈 현실을 잊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해준다. 그라나다 자체도, 놀라울 만큼 척박한 사막과 돌로 이어진 땅이지만 거기에는 꿈에서나 나올 법한 눈부신 정원이 있는 알함브라 궁전이 숨어있는 것이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온다는 것, 더군다나, 생명이 위독하여 중환자실에 들어온다는 것 그 사실은 환자도, 보호자도, 의료인에게도 큰 어려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의 간절한 마음과 최선의 노력으로 환자의 삶을 다시 얻은 순간, 어둠속에서 빛나는 알함브라 궁전을 마주한 순간만큼이나 아름다운 순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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