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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근로자 파업 중 업무개시명령은 ‘기본권 침해’

박양명
발행날짜: 2020-10-08 20:00:00

근거는 의료법 59조...의약분업 파업 후 전공의에 처음 발동
입법적 보완 필요에 공감...화물자동차법 비교대상으로 거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8일 업무개시명령의 문제점에 대한 포럼을 열었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이어진 의료계 총파업, 그중에서도 젊은의사의 단체행동으로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근거는 의료법 59조로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의료계는 의료인의 업무를 강제하는 국가의 명령 자체가 모욕적이고 위험하며 위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8일 '의료관계법상 업무개시명령의 현황과 문제점'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보건복지부는 2차 전국의사 총파업이 진행됐던 8월 26일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 전임의를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주요 병원 20곳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현장조사를 실시, 전공의와 전임의 35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서를 발부했다.

김용범 변호사가 업무개시명령의 위법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정부 방침에 대해 법무법인 오킴스는 위헌 및 행정 소송 진행에 나섰지만 전공의 파업 철회로 소송을 취하했다. 집단 소송 추진을 주도했던 김용범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발표자로 나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김 변호사는 "단체 행동이 환자 진료에 어떻게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지, 코로나 확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근거를 면밀히 조사하지 않고 과감하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업무개시명령 처분의 문제점으로 ▲절차상 하자 가능성 ▲처분 사유 부존재 가능성 ▲기본권 침해 가능성 ▲명확성 원칙 위배 ▲비례의 원칙 위배 가능성 등을 꼽았다.

이 중에서도 기본권 침해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봤다. 김 변호사는 의료법 59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

김 변호사는 "전공의는 수련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라는 속성을 가진다"라며 "헌법 10조에 따라 일반적 행동자유권뿐만 아니라 헌법 33조에서 보장하는 단결권, 단체행동권을 누릴 자유도 가진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 특히 경악한 부분은 전공의나 전임의가 사직서를 냈더라도 (사직서) 수리 전까지는 병원 소속이기 때문에 업무개시명령 발동이 정당하다고 한 것"이라며 "사직을 통해 의료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업무를 강제한다는 것은 업무개시명령이 극명하게 위헌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업무개시명령의 근거인 의료법 59조의 보완 또는 삭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사라는 이유로 자유 박탈 "의사는 노예" 비관

단지 의사 면허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직의 자유마저 박탈될 수 있다는 현실에 의료계는 '강제동원', '정부의 노예'라는 비관이 나왔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김재환 수련이사는 "최저임금을 받고 80시간 이상을 근무하고 있는 현실에서 잘못된 의료정책에 맞서서 파업도 못하면 노예와 다름없다"라며 "파업 당시 형사고발까지 당한 전공의는 필수진료과다. 정부에 소송까지 당하는 마당에 앞으로 필수진료과를 지원하는 전공의는 더 없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경희대 공공대학원 의료관리학과 김기영 교수는 의료인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강제동원의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의사는 응급상황에서 환자 구조 의무가 있지만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강제적 입법이 있는 나라는 없다"라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의료시스템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의료진에게 모욕적이며 위험하고 헌법상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강제동원 위협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신호이며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라며 "코로나19 때문에 의무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은 의료시스템에서 의료진의 기본권 및 인격권에 대한 상당한 침해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업무개시명령의 근거가 되는 의료법59조에 대한 보완적,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더했다.

김 교수는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명문규정이 있음에도 이번까지 포함해 발동한 것은 두 번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덕분에 학계에서 논란이나 업데이트가 전혀 없었다. 업무개시명령 대신 유인책이나 인센티브, 유효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법상 진료 명령에 의료진의 권리 보호에 대한 내용은 없다"라며 "의료진의 소위 강제의무는 해결책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의료연대본부 동남권원자력병원 의사노조분회장 김재현 교수는 화물자동차법과 비교하며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화물자동차법 14조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에 대해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이를 결정하기 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구체적 이유 및 향후 대책을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김 교수는 "복지부 장관 단독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것은 의사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과도한 억압"이라며 "의협은 대학교수, 전공의를 포함한 봉직의 단체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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