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영상의학은 4차 산업 바람타고 의료 AI 핵심으로 부각 디지털 병리 전환은 거북이 걸음…정부 지원책도 차이 확연
진단 분야에 있어 양대 축으로 꼽히는 영상의학과 병리학이 4차 산업 혁명의 바람을 타는 속도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명암이 갈리고 있다.
영상 분야는 4차 산업 핵심인 의료 AI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주목받고 있는 반면 병리학은 아직까지 첫 걸음조차 떼지 못하며 거북이 걸음을 걷고 있는 것. 특히 정부의 지원책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면서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상의학과 병리학 디지털 전환 속도차…격차 벌어져
대한병리학회 임원은 10일 "디지털 전환을 비롯해 빅데이터 활용과 상용화 등에서 영상의학과 병리학의 격차가 지나칠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며 "영상의학은 펄펄 날고 있는 반면 병리학은 아직 기고 있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영상의학과 병리학은 진단의 양대 축으로 꼽힌다.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나란한 걸음을 보였지만 현재는 확연하게 거리가 벌어진 것이 사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 활용에 있어서는 더욱 경향이 뚜렷하다.
영상의학의 경우 이미 디지털 전환이 끝난 만큼 축적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활용도를 높이며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미 굴지의 글로벌 기업인 GE와 필립스, 지멘스, 캐논 등은 막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한 의료 AI를 자사의 CT와 MRI 등에 속속 이식하며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는 상황.
또한 미래 의료로 꼽히는 닥터 왓슨 등 의료 AI 분야를 선도하는 것도 바로 영상의학이다. 특히 이러한 빅데이터가 점점 더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가고 있는 만큼 진단의 정확도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그만큼 산업계의 수요도 넘쳐난다. 국내에서만 영상의학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업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 1호 AI 의료기기인 뷰노메드 본에이지를 내놓은 뷰노를 비롯해 마찬가지로 흉부 엑스레이를 활용한 딥러닝 AI 기기를 내놓은 루닛 등 유니콘을 내다보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투자금도 이들 기업들로 쏟아지고 있다. 뷰노는 이미 2월 기업공개(IPO)를 확정지은 상태다. 뷰노의 기업가치는 적게 잡아도 2000억원 이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루닛도 3월 기술성 평가를 진행한 뒤 특례 상장 방식으로 IPO를 준비중이다. 현재 뷰노가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르면 올 10월경 상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병리학 분야는 아직 갈길이 멀다. 일단 디지털 병리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매우 높지만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인피니트헬스케어 등이 디지털 병리를 주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플랫폼의 형식일 뿐 이를 활용한 상용화된 AI기기는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아직까지 디지털 플랫폼조차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면서 빅데이터를 모을래야 모을 수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 속도가 격차 벌려…디지털 병리 여전히 난항
이러한 차이는 결국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만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영상의학은 이미 10년전부터 완벽하게 디지털 전환이 이뤄졌다.
과거 X레이 필름은 온전히 의료기관내 컴퓨터로 들어갔고 CT나 MRI 영상 등도 이미 완전히 디지털로 전환돼 사실상 종이없는 병원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병리학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다르다. 디지털 병리가 화두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전환 속도는 매우 느리다.
실제로 현재 온전하게 디지털 병리 시스템을 갖춘 곳은 국내에 단 3곳 뿐이다.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이 바로 그 곳이다.
이어서 서울아산병원 등이 대규모 예산을 책정해 디지털 병리를 천명했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하게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예산과 의지가 있는 이른바 빅5병원들조차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병리학 분야에서 이처럼 디지털 전환에 속도가 붙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막대한 예산과 더불어 병리학의 특성을 지적한다.
적게는 수배에서 많게는 수십배, 수백배 확대를 기본으로 하는 병리검사의 특성상 초 고해상도 파일이 필요한데 이 용량과 처리 기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한병리학회 관계자는 "병리 슬라이드 하나를 디지털로 전환하면 평균적으로 6기가 바이트에서 크게는 20기가 바이트까지 나온다"며 "암 환자의 경우 20개 슬라이드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단순 계산하면 환자 한명 당 한번에 100기가 바이트 이상의 데이터가 생긴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흔히 보듯 CT나 MRI영상, X레이까지 온전히 영상 정보를 모두 담아도 CD 한장에 들어가지 않느냐"며 "하지만 병리 슬라이드는 DVD는 커녕 하드 디스크 하나에도 담기지 못할 데이터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러한 엄청난 데이터에 대한 저장과 관리도 문제지만 의료기관 단위에서 이를 처리하고 빅데이터로 만드는데는 엄청난 부담이 생겨난다는 의미다.
디지털 병리 수가 적용에 기대…정부 지원책도 차이 확연
이로 인해 병리학회 등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루 빨리 가이드라인과 더불어 수가 적용 등 지원 방안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영상의학이 PACS 등 디지털 전환에 힘입어 빅데이터가 상용화되면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듯 병리학도 하루 빨리 이러한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병리학회는 지난해 병리학에 대한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과 목표, 방법론을 담은 '디지털 병리 권고안'을 마련하며 정책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이 권고안에는 디지털 병리의 필요성과 더불어 기본 용어와 수반되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추천 내용을 총 망라하고 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병리 추진을 위해 필요한 선행 조건들과 실행 계획은 물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 제언도 함께 담고 있다.
권고안을 주도한 여의도성모병원 병리과 정요셉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 병리는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며 미래의 핵심 부가 가치 기술"이라며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정책적 지원 방안을 촉구하기 위해 권고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일단은 이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상의학 분야에 비해 적극성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실제로 정부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필두로 디지털 병리 가이드라인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심평원은 디지털 병리를 골자로 하는 '혁신적 의료기술 요양급여 여부 평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를 통해 이를 보고한 상황이다.
4차 산업 혁명에 디지털 헬스케어가 큰 축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병리를 지원하기 위한 급여 적용 방침 등을 정리한 셈이다.
이에 맞춰 복지부도 디지털 병리에 대한 근거 수준과 급여 적용 지침을 세부적으로 검토하며 한순간 속도가 붙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아직까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은 더디기만 한 상태다.
대한병리학회 임원은 "지난해만 해도 복지부는 물론 심평원과 활발하게 의견이 오갔는데 어느 순간 상당히 더뎌진 상태"라며 "가끔 학회로 의견 조회가 오긴 하지만 진행이 되고 있는지도 미지수"라고 털어놨다.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기 산업 육성 및 혁신 의료기기 지원법을 만들고 뷰노와 루닛 등 의료영상 AI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
디지털 병리와 관련한 학계와 기업들이 상대적 소외감을 내보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련 기업들도 답답한 심정…식약처 허가 및 심사 계획 관심
이러한 가운데 의료산업에 대한 허가와 승인, 지원을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환기되고 있다.
실제로 평가원은 지난주 의료기기 기업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민원 설명회에서 디지털 병리 가이드라인에 대한 세부안을 내놔 주목을 받았다.
오는 6월까지 디지털 병리 체외 진단 제품에 대한 임상 성능 평가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것. 디지털 병리를 활용한 AI 기기에 대한 허가와 심사 지침을 내놓은 셈이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우선 기기별 비교와 참조 표준에 필요한 병리과 전문의의 판독 경력과 확진 기준이 담길 예정이다.
또한 민감도와 특이도 등 유효성 평가 변수를 확정하는 등 임상적 성능 평가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도 포함된다.
의학계는 물론 관련 기업들이 기대감을 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결국 디지털 병리 AI 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온다는 의미는 정부 부처 내부에서 수가 적용 등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서울대병원 병리과 이경분 교수는 "뷰노와 루닛 등 의료 영상 AI 기업들이 성장성 있는 좋은 모델을 제시하면서 디지털 병리와 빅데이터에 대한 기대감도 동시에 높아졌다"며 "병리학이 새롭게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문제는 디지털 병리를 활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결국 뛰어난 AI 기반 기술은 있지만 여기에 넣고 돌릴 수 있는 빅데이터가 없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수가 적용 등을 통한 저변 확대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그렇다면 과연 국내에서 디지털 병리가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수가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병리 전문가들은 넉넉잡아 100억원이면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적으로 의료기관에 디지털 병리 시스템을 구축하는데는 수억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수가가 적용된다는 전제만 놓인다면 연간 100억원 정도의 수가 가산만으로도 충분히 전국에 시스템을 확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다.
대한병리학회 관계자는 "현재 병리 판독 수가가 저평가 되어 있는 만큼 디지털 병리 전환을 위해 가산 수가만 인정해도 의료기관들의 수요가 있을 것"이라며 "수요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전국 단위의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현 수가 체제를 감안하면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영상의학이 PACS에 수가가 가산되면서 급속도로 디지털화가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적은 예산으로 엄청난 부가가치가 기대되는 산업 기반을 이루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도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재 당면 과제들을 풀어가야 하는 만큼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현재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 세계적 비상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인력과 예산을 분배할 여유가 없다는 의견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리학을 비롯해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의 필요성은 어느때보다 공감하고 있다"며 "이미 이를 위한 준비를 많은 부분 마쳤고 학계 및 의료계와도 상당한 공감을 이룬 상태"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하지만 현재 코로나 대유행으로 보건의료 분야에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만큼 당분간 예산과 인력을 이곳에 투입할 수 밖에 없다"며 "최우선 순위에 집중하고 있을 뿐 중요성이나 필요성을 모르거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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