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임신중절약 미프지미소의 처방 범위, 권한 등의 의견 수렴을 위해 전문가들을 소집했지만 첫 회의부터 파행에 이르면서 난항이 예상된다.
첫 회의에서 산부인과가 주축이 된 학회 및 의사회가 합법적인 낙태 범위 등을 명시한 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논의가 무의미하다며 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24일 식약처는 임신중절의약품 안전관리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자문 회의를 개최하고 품목허가 심사에 들어간 미프지미소와 관련 ▲진단 및 처방 ▲조제 및 복용 ▲임신중절 확인에 대해 의견을 청취했다.
정부 부처에선 식품의약품안전처(허가총괄담당관, 의약품정책과, 종양약품과), 보건복지부(약무정책과, 의료인력정책과)가 참여했고 전문가 단체는 대한약사회, 한국병원약사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산부인과학회,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가 참여했다.
이날 회의는 오후 3시 30분부터 약 2시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시작 30분만에 의료계가 동반 퇴장하며 각 직역 및 부처간 의견 교환이 이뤄지지 못했다.
의료계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합법, 불법의 낙태 영역에 대한 법적 기반이 없는 '입법 공백' 상태에서의 낙태약 허가는 행정 절차상 하자라며 논의를 거부했다.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2019년 4월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이미 지난해 입법시한이 지나면서 낙태죄 처벌 규정이 효력을 잃게 됐다"며 "현행법으로는 낙태 행위가 처벌되지 않지만, 무엇이 합법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낙태를 암시하는 문서나 도안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법률 조문을 삭제해 모자보건법상 낙태약 관련 의약품을 광고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도 계류 중에 있다"며 "이런 법안들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낙태약은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법적 관점에서 보면 입법 공백 상황에서 낙태약 허가에 속도를 내는 것은 식약처가 불법 의약품을 수입 허가하는 특혜 부여이자 직권 남용이라는 것이 의사회의 판단.
김재연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낙태약이 허가된다면 임신부가 해당 약 처방을 요청할 시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런 절차상 하자가 개선된 후라면 얼마든지 논의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낙태약을 먼저 허가하는 것은 의사가 범죄를 저지르도록 방조하는 행위"라며 "이에 의료계 단체들은 해당 언급을 끝으로 자리를 나왔다"고 밝혔다.
진단 및 처방 권한, 조제 권한에서 의-약사 직역간에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지만 이날 의료계 단체의 이석으로 약사회는 별다른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의료계가 입법 공백 상태 해결 선제 조건을 내건 반면 식약처는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어 의견 조율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처는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허가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산부인과학회, 의사회의 입장과 달리 타 의사들의 처방권 부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갈등의 골을 키우고 있는 상태다.
식약처 관계자는 "처방 권한을 산부인과 전공으로 제한할지, 타 전공에도 역량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처방권을 부여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헌법불합치가 나온 만큼 추가적인 법령 개정이 없어도 허가는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자보건법상 표시기재 등에서 낙태약 표현을 금지하고 있지만 임신중절을 효능·효과 부분에 기재할 경우 임신 유도 등의 암시가 아닌 만큼 현행 제도에서 표기가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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