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의료행위를 '임의비급여'라며 의료기관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지급명령 신청을 남발하고 있는 실손보험사.
소송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실손보험사에 이미 보험금을 타간 환자 대신 진료비를 반환한 병의원이 다시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실손보험사는 환자를 대신해 의료기관에 부당이득금 소송을 제기할 권리(채권자대위권)가 없다는 법원 판결을 역이용한 것.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1 민사부는 최근 서울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던 L원장이 K손해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적으로 3000만원 이하면 소액재판이라고 하는데 실손보험사가 지역 단위로 소액 진료 건에 대한 지급명령신청을 먼저 한다. 지급명령은 소송 전 단계로 보험사가 지급명령을 신청하면 법원의 이름으로 돈을 반환하라는 명령서가 나가는 식이다.
실손보험사는 법원 판단이 유리하게 나오면 금액이 큰 병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는 후문이다. 압박을 느낀 의료기관이 금액을 조율해 합의를 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급명령에 따르지 않으려면 2주 안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해 소송 절차를 밟게 된다. 이의신청 기간을 놓쳐 그대로 법원의 명령이 확정되면 의료기관은 보험사가 제기한 금액에다 이자까지 내야 한다.
L원장은 법원의 지급명령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기간을 놓쳤다. 그 결과 L원장에게 맘모톰 유방종양절제술을 받은 환자 6명이 K손해보험에게 타간 진료비 1809만원에다 연 12%의 이자를 더해 1831만원을 반환해야 했다.
상황은 실손보험사가 환자를 대신해서 의료기관에 보험료를 달라고 할 권리(채권자대위권)가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반전됐다.
2019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S화재해상보험이 맘모톰과 스크램블러 시술을 임의비급여로 했다며 전라남도 한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환수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보험사가 소송을 제기할 자격 자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판결 이후로 보험사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임의비급여 관련 부당이득금, 손해배상 관련 소송에서는 각하 판단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 판결은 L원장이 K손해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소송에도 영향을 끼쳤다.
L원장은 K손해보험에 토해낸 진료비를 돌려받고자 부당이득금 소송을 역으로 제기했고, 2심까지 간 끝에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에서 이겼다. 그 사이 S화재해상보험의 부당이득금 소송 판결이 있었다.
해당 법원 역시 보험사는 채권자대위권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K손해보험은 "맘모톰 유방종양절제술은 임의비급여로 진료비를 받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으로 무효"라며 "L원장은 보험사와 관계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환자는 부당이득반환채권을 갖고 있고 보험사는 환자에게 지급한 보험금 상당액의 부당이득반한채권을 갖고 있다"고 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은 피보험자(환자)가 시술을 받은 것에 지급한 진료비"라며 "보험사가 환자 권리를 대신해서 행사하는 것이 채권의 현실적 이행을 유효, 적절하게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 환자의 자유로운 재산 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고 판단했다.
또 "보험사가 환자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을 구함에 있어서 환자에 관한 무자력 또는 집행 곤란 개연성이 높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라며 "다수의 피보험자를 대신해 하나의 의료기관을 상대로 피대위채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그 채권의 성립 여부와 범위는 피보험자별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법원은 보험사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환수한다고 하더라도 피보험자들이 병원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를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고 봤다.
설사 L원장이 임의비급여 시술을 했더라도 보험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의료기관은 진료행위를 하고 진료비를 받는 과정에서 환자에게만 법률상 또는 계약상 주의의무를 부담한다"라며 "피보험자의 보험자에 불과한 실손보험사에게 진료계약에 따른 어떤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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