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포괄수가제 지침 개정으로 2746개에 달하는 치료재료가 한번에 포괄수가에 묶이면서 의료기기사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의료기기 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내세우면서 오히려 발목을 잡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기업들의 항변. 포괄수가가 적용되면 결국 신의료기술이나 혁신기술은 외면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신포괄수가제 지침 개정…2746개 치료재료 무더기 포괄 편입
31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적용된 신포괄수가제 지침 개정안으로 인해 의료기기 기업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신포괄수가제는 행위와 치료재료 및 악제를 '포괄항목'과 '비 포괄항목'으로 구분하는 하이브리드형 수가 제도다.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인 건강보험 재정 폭증을 차단하고 포괄수가제의 단점인 지불적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 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서 도출된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를 혼합한 새로운 제도를 만든 셈이다.
이렇듯 두 수가 제도의 장단점을 조합하면서 신포괄수가 제도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태다. 2009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시작한 이래 지금은 98개 의료기관이 이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약 기업이나 의료기기 기업들도 크게 불만은 없던 상태였다. 비록 일부 치료재료가 포괄수가에 묶이기는 했지만 10만원 이상의 재료들은 행위별 수가제, 즉 비 포괄항목에 포함돼 별도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상쇄가 가능했던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올 1월부터 시작됐다. 정부가 올해 지침 개정을 통해 포괄항목 치료재료에 대한 인정 폭을 대폭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개정된 신포괄수가제를 살펴보면 올해부터는 포괄/비 포괄의 구분 기준이 1인당 사용금액으로 변경되며 분류 기본 원칙이 20만원 이상의 치료재료로 지정됐다.
즉, 20만원 이하의 치료재료는 포괄수가로 일괄 포함되고 20만원을 넘어가는 재료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과거와 같이 비 포괄로 별도 청구가 가능해진 셈이다.
이러한 기준 변경으로 새롭게 비 포괄 항목에서 포괄 항목으로 넘어온 치료재료는 무려 2746개에 달한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별도 청구가 가능했던 치료재료 2746개를 이제는 청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의료기기 기업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포괄수가제도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같은 급격한 지침 개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황효정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포괄수가 위원장(메드트로닉 이사)은 "의료기관 입장에서 포괄수가를 적용받게 되면 당연스럽게 이에 들어가는 치료재료 원가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어떤 제품을 쓰던 같은 돈을 받는 만큼 결국 포괄 폼목을 사용하지 않거나 줄이려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의료기기 기업들, 지불 형평성·신의료기술 사장 문제 비판
특히 의료기기 기업들은 이러한 신포괄수가제도 지침 개정에 대해 반발하는 이유가 단순히 치료재료 상당수가 포괄 수가에 포함된 이유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포괄 수가 편입으로 단순히 의료기기 기업들의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불형평성이다.
그렇다면 지불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배경은 뭘까. 이는 이번 지침 개정에 포함된 단서 조항에 있다.
이번에 지침이 개정되면서 '유사 항목 동일 분류' 원칙이 새롭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수술용 가위를 예를 들면 가위 대부분이 포괄 항목에 포함돼 있을 경우 가위에 여러가지 기능을 추가해 재료값이 20만원 이상이라 하더라도 유사 항목 동일 분류 원칙에 의해 포괄 항목으로 편입된다는 의미다.
결국 유사 항목이 포괄 항목에 해당되면 규격이나 재질, 형태 등 비용 차이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포괄로 들어간다는 뜻이 된다.
기업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품목별 성능이나 임상적 유용성에 따라 보험 상한가가 엄밀하게 차이가 있는데도 이를 모두 포괄로 묶을 경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
지정훈 의료기기산업협회 수가개선 분과장(스트라이커 상무)은 "품목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비합리적 구분으로 모두 포괄로 편입시킨다면 지불적정성을 저하시키는 동시에 형평성도 어긋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지혈제 중 20만원을 초과하는 '흡수성 체내용 지혈용품'은 의료기기 카테고리에 들어가 포괄로 들어가는 반면 동일한 기능의 약제는 보험상한가가 20만원을 넘어간다는 이유로 비포괄로 나눠지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 기업들은 이러한 지침이 지속될 경우 치료재료 질 하락과 더불어 신의료기술 도입에 중대한 장벽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치료재료가 포괄로 편입되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포괄 품목의 사용을 줄일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는 곧 사용량 감소로 이어져 관련 품목 시장의 침체를 가져온다는 것. 결국 좋은 치료재료는 사장되고 값싼 치료재료만 남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또한 신기술을 탑재한 의료기기나 신의료기술이 포괄 품목에 묶일 경우 적절한 가치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개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더 발전된 기기가 사장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황효정 위원장은 "정부가 의료기기 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까지 제정하면서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침 개정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산업 육성 저해 요소가 아닐 수 없다"며 "혁신 의료기기와 신의료기술에 대한 적정 가치 보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움직임"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제라도 지불모형 개편 시 의료계와 학계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산업계 등 이해 당사자들을 논의에 포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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