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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의전원? 오답 아닌 정답 찾기를 바란다

여한솔 회장
발행날짜: 2022-05-09 05:10:00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응급실에서 중환, 경환, 주취자들과 밤을 하얗게 불태우고 아침 뉴스를 보면 화들짝 놀라는 것도 이제는 익숙할 지경이다. 의료계를 위한다고 끊임없이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소식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들의 의지와 정반대의 입장으로 전해지는지 모르겠다.

의사, 그것도 전문의를 만나기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더 쉬운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얄팍한 통계치를 들고 와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대한민국에 '의사 과학자'가 없으니 갑자기 카이스트에 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해 이곳을 통해 양성하겠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의사가 왜 부족한가. 지방의 지역거점 종합병원들은 뒤로한 채 서울 경기권으로만 환자가 몰리는 상황, 충분히 2차급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가능한 수준의 질병을 상급종합병원까지 오게끔 유도하는 의료전달체계 붕괴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채, 의사가 부족하다고 외치는 자들은 대체 단 한 번이라도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이해해보려 했는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에 의사 과학자가 왜 부족한가? 기초의학에 대한 투자는 턱없이 열악하기 짝이 없고, 의과대학을 입학해 '과학자'로서 꿈을 갖는 의대생이 마주하는 기초의학, 의과학의 현실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이제 와서 의전원 하나 설립한다고 의사 과학자 육성에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고 언성 높이는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의과학 육성시스템을 단 한 번이라도 냉철하게 분석했는지 묻고 싶다.

의학과 제약 연구개발 분야에서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해당 지역구에 차로 3~40분만 나가면 되는 거리에 대학병원이 3개나 있는 곳에 또 하나의 종합병원을 설립해 지역주민들의 이기심만 부추겨 자신들의 공로로 치하하려는 꼼수가 여실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못하듯, 이처럼 비상식적인 일들에 수천억에서 1조원 넘는 예산이 버젓이 반영되고 있다. 1분만 생각해보면 잘못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쏟아부을 수많은 재원을 기존 의사 과학자와 의과학에 관심을 두고 전공의, 그리고 의대생들에게 제공 및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을까.

의사 과학자 양성은 매우 중요한 국가 육성 사업이 되어야 한다. 의사면허를 가진 이들이 질환과 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의학 관련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이것이 전국 의료현장에 적용되어 의료의 전체적인 질적 향상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의학교육은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 양성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의대를 졸업하는 3천여 명의 의대생 중 1년에 30~40명만이 기초의학을 진로로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디딘다. 이들이 의과대학원의 석·박사를 졸업하고 난 뒤에도 다시 임상의로 복귀하는 정도가 십중팔구에 다다른다. 즉, 대한민국 의사면허를 가진 이들은 몇몇 열성적인 이들을 제외하고는 99%가 임상의학으로 빠져나간다. 자 그러면, 왜 이들이 임상과 연관된 과학을 포기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카이스트의전원 설립 정책에 물음표 수십 개를 붙이고 싶은 필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의사 과학자로 진로를 선택하게 되면, 현재 대한민국 의사 과학자 육성 정책상 직업의 불안정성, 연구기회의 부족, 경제적 유인책 부족 등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즉 한 줄로 요약하면, 의사 과학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대대적인 물적 지원 없이는 백 개의 의전원을 설립한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 코로나 병상 확보가 되지 않아 정부가 애를 먹을 때 그들은 '의사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2022년 4월 지금 코로나 현장은 어떠한가. 병상이 부족하지도 않고, 의사가 부족하지도 않다. 실제 응급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코로나 현장의 상황은 아주 많이 나아졌다. 왜 일까? 의사를 새로 더 뽑았는가? 아니면 코로나 병원을 신축하였는가? 아니다. 정부가 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예전처럼 보따리만 싸매고 있지 않고 재원을 풀었다. 의료계를 향해 물질적 재원을 아끼지 않았고, 의료계가 화답한 것이다.

갑자기 코로나 사태를 이야기하는 것은 글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생각하겠지만, 카이스트 의전원 설립과 관련해 나는 오히려 이 사태를 통해 얻은 교훈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카이스트 의전원 설립은 의사 과학자 양성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오답'에 불과하다. 오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니 응급실 근무를 마치고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에 의사는 아주 많다. '부족하니 많이 뽑아야 한다'는 일차원적 수준에서 제발 벗어나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는데 현재의 턱없는 수준의 지원을 인정하고, 수많은 재원을 기존 의사 과학자와 의과학에 관심을 가질 의학도에게 제공하고,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의료체계의 그림을 그려 나갈 때 이 수많은 의사가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여 주길 바란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따라 정확하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의전원 설립은 문제의 오답임을 인정하고 손들고 있는 정답을 찾아가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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