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진료를 행함에 있어 환자의 상황과 당시의 의료 수준 그리고 자기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조치 중에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이고(대법원 1996. 6. 25. 선고 94다13046 판결), 질병의 진단, 치료 방법의 선택 등에 있어서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
그런데 의사의 진단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보험사들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손해사정사들이다. 예를 들어서, 진단 자체를 믿을 수 없다거나 아니면 수술을 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상태인데 수술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보험사는 환자들에게 “다른 의사로부터 자문을 구해보겠다. 동의해라” 라는 요구를 하는데, 환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다시 병원에 찾아와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자문을 구하곤 한다.
외부의료자문이 이루어질 경우의 프로세스
일단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의사들은 상당한 분노를 느끼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내가 허위 진단이라도 했다는 것인지, 사기라도 쳤다는 것인지, 그리고 환자를 직접 진단하지도 않은 의사가 차트만 보고 어떻게 나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외부의료자문은 분명 보험약관에서 명시하고 있는 절차이고, 이 문제는 환자와 보험사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의사가 관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덜컥 동의를 해 준 환자가 받아가지고 온 자문회신서의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세극등현미경 영상이 없어서 명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백내장 증상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암으로 진단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입원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등등 온통 병원의 판단을 부정하는 말만 가득 적혀있다. 대체 이런 말도 안되는 회신서를 누가 썼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지만, 그건 또 비밀이란다.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답답한 상황이 된다. “의료자문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심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겠다.” 라거나, “지급 거절”, “심사보류” 등의 단어가 기재된 통지서를 받게 된다. 보험금 지급을 믿고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다.
최근에, 이처럼 밑도끝도 없이 “외부의료자문 동의”를 요구하는 보험사 직원들과 손해사정법인들 때문에 고충을 토로하는 의사들과 피보험자들이 참 많다.
그럼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보험과 관련한 유튜브 채널을 검색해보면, 외부의료자문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설명을 해주는 콘텐츠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절대 동의해주면 안되는 서류”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보험사들로부터 자문료를 받는 의사들이 보험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회신을 할 수밖에 없는데다가, 환자의 상태를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정확한 판단이 이루어질 수 없어서, 결과적으로 보험지급 거절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의료자문이 필요 없는 케이스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응당 제출해야 할 서류를 모두 제출하였고, 의사의 소견도 명확하다면 굳이 다시 한 번 부정확한 자문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당장의 예산이 부족하거나 정책적인 이유 등으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문을 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세극등현미경 영상의 경우, 법적으로 꼭 보관해야 할 의무기록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이 이를 보험사에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자료가 없이 백내장 진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는 무의미한 자문절차가 될 것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경우” 적극적으로 외부의료자문을 통해 조사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서 소견서에 기재된 상병코드가 C인지 D인지 불명확하다거나, 과거에 보험사기 전력이 있거 중복보장이 많은 피보험자라면 외부의료자문을 받아볼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보험사고 조사대상 선정 관련 5대 기본원칙(안), 2022. 4. 27.
구 분 | 조건 (예시) | |
① | 치료근거 제출거부 | ▪정당한 사유 없이 치료근거 제출을 거부·방해하는 경우 |
② | 신빙성 저하 | ▪환자상태, 검사결과, 의무기록의 불일치로 신빙성이 의심되는 경우 |
③ | 치료·입원목적 불명확 | ▪심평원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가이드라인 등에 비추어 치료/입원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며 의사의 진단·소견도 불명확한 경우 |
④ | 비합리적인 가격 | ▪진료비용이 합리적인 사유없이 공시된 가격보다 현저히 높은 경우로서 보험사기 행위 등이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경우 |
⑤ | 과잉진료 의심 의료기관 등 | ▪과잉진료 의심 의료기관 등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한 경우로서 보험사기 행위 등이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경우 · 인터넷·SNS 등 과잉진료 유발 광고, 브로커에게 환자 소개비 지급 ·교통·숙박비 등 페이백 제공, 원거리 지역 환자 비중 50% 초과 등 |
오히려 보험협회의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의료자문이 보험금 부지급 또는 삭감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병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각종 검사결과지 등이 명확하고 다툼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면, 보험사의 요구대로 의료자문을 받고 빨리 심사를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 때 피보험자 측에서 보험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비(非)자문의를 지정해서 차트를 보낼 수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반드시 자문의를 통해서만 외부의료자문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절차는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보험사 직원과 함께 제3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동행검사도 마찬가지다. 보험사나 손해사정법인이 지정하는 의사가 아닌 제3의 병원을 예약해서 가되, 그 의사가 보험사의 자문의인지 아닌지 꼭 확인해보고 절차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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