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필수의료 대책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의료계에선 관련 논의가 겉핥기식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23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필수의료 논의가 근본적인 원인분석 및 장기적인 단계적 개선책 모색이 아닌, 감정적인 논의나 단편적인 대책에 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필수의료 논의가 부적절하다는 의료계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한병원의사협회 역시 지난 16일 성명서를 내고 관련 논의가 보여주기 식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정부 주도로 여러 간담회 및 토론회가 개최됐지만 이는 이번 논란을 의식한 급조된 행사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응급의학의사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확한 최종목표를 설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이를 위해 독립적인 응급의료 컨트롤타워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혼란이 계속되는 응급의료 현장도 조명했다. 최근 관계당국은 수도권 중증 응급환자 당직 의료기관을 선정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119가 거리를 헤매고 응급환자, 확진자들이 적절한 응급치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다.
이는 관련 문제가 단순한 필수의료인력 부족 때문만이 아닌 시설·장비·관리·시스템 등 전반적인 응급의료 인프라의 부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장과 관리감독 기관 간의 의사소통이 없는 상황을 문제로 꼽았다. 더욱이 방역·응급의료에서 중심역할을 수행해야 할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장이 반년 넘게 공석이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코로나19 환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응급실이 난리가 나는 것은 관계당국과 책임기관들의 준비 부족 때문"이라며 "현장 의견을 무시한 무책임한 관치형 관리 지침도 문제다. 방역과 현장의 온도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개선은 요원하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코로나19가 계속될 것인데 매번 이 같은 혼란과 불필요한 사망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이를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가 논의체를 즉각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응급의료 대응책들이 응급의학과를 배제한 채 만들어지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응급의료는 병원 전 단계에서 병원단계까지 다양한 직역이 필요한 시스템으로 한 두 개인이 응급의료를 대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관계기관이 모두 참여한 전문가 논의체를 구성해 현장에서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의사정원 확대 논의를 중단하고 필수의료 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의료진 현장 이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원을 확대하는 방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인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선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장기적 인력계획과 함께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 현장 이탈을 방지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응급의료 컨트롤타워 재구축 필요성도 강조했다. 응급의료 시스템은 감염병 대응 뿐 아니라 중증응급환자 및 외상환자 응급처치 및 구조·이송·최종치료 등의 업무를 수행·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응급의료 대책 부재와 비효율적인 대응 등이 개선되지 않는 원인은 현장의 의견을 받아들일 논의체와 컨트롤타워의 부재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필수의료 논의에 응급의학과 자체가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응급의학과를 배제하고 응급의료 대책을 만들 때 제대로 된 대책이 만들어질 수 없다"며 "공공의료는 응급의료의 일부분이다. 공공의료가 응급의료체계를 지도감독할 수 없다. 공공의료가 응급의료를 지도감독하는 현재의 상황은 현장과의 괴리와 여러 문제들만 키울 뿐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하여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느리더라도 확실한 해결책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성과와 여론에 밀려 근시안적인 대응에만 매달린다면 응급의료의 미래는 없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관계당국과 책임기관의 성의 있는 변화를 보여 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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