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사과학자' 라는 키워드는 4차 산업 혁명과 신약 개발 등을 배경으로 의료계 곳곳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0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절반 이상이 의사과학자 였으며, 추후 바이오헬스산업시대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의사과학자가 꼽힌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인공지능, 3D 프린팅 등 각종 최신 기술이 의료에 접목되면서, 국가적으로 인력양성부터 연구비까지 지원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의사과학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이유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연구비로 지원되는 금액보다 환자진료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훨씬 크다. 또한 과학기술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각 부처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업은 일원화되지 않아 중장기적 지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시스템상 의사과학자는 창업 이외에는 대학병원에 소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개최한 의사과학자 진로 콘서트에서는 현재 의사과학자의 성공 모델이 되고 있는 의사들을 초청해 연구와 창업을 겸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다루었다. 임상업무의 과도한 로딩은 차치하고서라도, 대학병원들이 적자를 면하기 힘든 권역외상센터를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 병원 입장에서 임상교수가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지원할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종합해 보면 현재 의사과학자 양성 정책은 과도기에 있으며 임상의가 개인적 차원에서 연구에 접근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장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임상의가 되기 전 의학교육과정에서 연구를 접하는 것은 어떨까?
필자가 재학 중인 가천대학교에는 본과 2학년 2학기 교과과정 중 약 8주 동안 의학연구과정이 배정되어 있다. 사전에 교수님께서 진행중인 연구와 해당 연구 지원 자격 요건 등을 전달받은 학생이 직접 본인에게 적합한 연구를 찾아 지원하는 방식이며, 학기말에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평가받는 시간을 가진다. 두 달 남짓한 시간동안 가시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야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모든 연구를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의학연구과정은 앞서 말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많은 노력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 의사과학자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는 좋은 기회이며, 임상의가 된 후 비일비재하게 논문을 쓰고 연구를 평가받는 일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의과대학에 진학해 당연히 임상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입장에서 의학연구과정은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신경외과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뇌혈관내수술 임상 증례 전달에 적합한 메디컬 일러스트 제작 연구를 시행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해당 연구가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의 영역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졌으나 메디컬 일러스트는 단순히 회화가 아닌 도식화된 데이터의 영역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의료인들은 실생활에서 각종 논문 작성 또는 동료 의료인, 수련의, 또는 학생에게 의학적 정보를 전달할 시에 직관적인 설명 방식이 필요함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또한 비의료인이 일러스트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수술 참관과 의료인과의 소통이 필수인데 이 절차가 줄어들어 효율적이며 야기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느꼈다. 결론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회화 능력은 추후 가지게 될 임상의로서의 자격에 더해 하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이미 의사들은 기존의 역할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인공지능에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기초 연구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은 또 하나의 무기가 된다. 앞서 소개한 의사과학자 진로 콘서트에서 서울의대 김종일 교수는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다가도 언제든지 임상의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의사과학자라는 점이 리스크가 아닌, 의사로서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메리트라고 생각하고 좀더 이른 시기에 작은 시작부터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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