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증제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처방 규제가 완화됐다는 소식에 기대 여론이 형성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기존 고시에는 변함이 없고 특정 질환에 의해 발현된 2차성 우울증에만 처방이 가능하다는 행정해석이 나왔을 뿐이라는 진단이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SSRI 항우울제 급여기준 관련 질의 및 응답' 이후 관련 처방 기준이 완화됐다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기존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외에는 SSRI를 60일 이상 처방할 수 없었는데 이 같은 규제가 완화됐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질의응답에서 복지부는 '기타 질환'으로 인한 우울증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정신건강의학과 자문의뢰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1회 60일 범위' 내에서 반복 처방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우울증 환자 치료 접근성이 기존 대비 20배 이상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비상조치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살 사망자의 75%가 자살 1개월 전까지 여러 가지 신체 증상으로 병·의원을 방문하는 만큼, 모든 전문과에서 우울증을 진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 우울자살예방학회 홍승봉 회장은 "이제 정부와 의료계가 힘을 모아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을 OECD 최저에서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모든 의사들은 자살 생각도 우울증과 같이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인식해야 한다.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을 적극 발견해 이를 예방 노력이 우리나라 자살률을 낮추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복지부 답변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과도한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복지부 답변은 타 전문과에 내원한 환자는 고혈압·두통 등 특정 질환에서 기인한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에만 SSRI 처방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기존 고시에서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다. 우울증 치료 목적이라면 타 전문과를 방문해도 SSRI를 처방받을 수 없다는 것.
실제 복지부 답변에 따르면 타 전문과에서 우울증 환자에게 SSRI를 처방하려면 대부분 정신건강의학과 자문의뢰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한두 가지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 ▲치료 1년 이내에 재발한 경우 ▲양극성 장애가 의심되는 경우 ▲환자 또는 가족이 전과를 요구하는 경우 ▲자살 생각이 지속되는 경우 ▲알코올 또는 약물남용, 인격 장애 등 공존 질환이 있는 경우 ▲중증 우울증상을 보이는 경우 ▲자기 관리가 안 되는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의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뢰가 특히 시급한 경우는 ▲자살 계획이 있는 경우 ▲정신병적 증상이 있는 경우 ▲증상이 심하고 심한 불안이 동반된 경우 ▲자기 관리가 심하게 안 되는 경우 ▲타인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경우다.
이와 관련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신용선 보험이사는 "복지부 질의응답 이후 SSRI를 모든 전문과에서 처방할 수 있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SSRI가 특정 질환으로 인한 2차성 우울증에만 처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여전히 비정신과에서는 우울증이라고 해서 바로 약을 처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히려 타 전문과는 위 사항에 해당하는 우울증 환자를 바로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내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라며 "우울증은 전문성을 가진 의사가 환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모든 전문과에서 우울증을 진료할 수 있다는 식으로 호도되는 부분이 있고 이로 인해 과도한 기대감이 형성된 상황인데, 조만간 의사회 차원에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개원이 늘어나면서 이미 우울증 치료 접근성이 향상된 상황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전문과를 통해 먼저 우울증을 진료한다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오히려 늦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김동욱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에는 1500곳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 있고 이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지방에 고루 분포해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며 "이런 상황에서 타 전문과에서 우울증을 진료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가 받아야 할 최선의 치료를 늦추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과적인 우울증은 약만으로 치료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신요법도 필요하다"며 "이를 약만으로 치료하다 보면 여러 부작용이 생기고 치료가 지연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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