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통증의학과 지원율이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수술현장 마취 인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학회가 손 걷고 나섰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연준흠 회장은 지난 12일, 대한의사협회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이 증가세인 상황을 전하며 그 이유로 워라밸을 꼽았다.
전공의 수련 기간 중에 주 80시간 근무환경이 잘 지켜지며, 환자인계 후 병원을 벗어나면 더 업무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젊은 세대에게 장점으로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비교적 환자·보호자와 갈등을 겪을 일이 많지 않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반면 의사로서 자부심을 느낄 기회가 많은데, 수술 중 환자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생체징후에서 가장 중요한 혈역학 및 호흡 관리를 가장 신속·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취 분야 외에도 통증·중환자의학 영역에서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특징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검사·시술 시 진정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으며 수술 전 마취자문 클리닉의 확대, 긴급 대응 참여 요구도 증가 등 그 영역이 점차 확대하고 있다.
연 회장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전공의 수료 이후 취업 자리나 대학병원 TO가 늘어나고 있어서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만큼 학문적 관심이 있는 전공의들에게도 가치가 있다. 또 최근 국민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인 환자들이 증가하면서 통증클리닉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마취전문의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마취전문의는 고위험 수술 마취 및 중환자 관리, 당직근무 등으로 근무환경이 열악한 반면 통증클리닉에 비해 보상이 적기 때문이다. 이에 부담을 느낀 전문의들이 개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실제 최근 10년 간 마취통증의학과 개원이 73.6% 증가했다.
특히 분만·소아진료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분만 특성상 언제든 수술이 잡힐 수 있고 무과실 의료사고에도 소송이 잦아 마취전문의가 이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소아마취분야 역시 환자가 작아 마취를 위한 술기가 더 어렵고, 좁은 생리적 안전영역으로 약제 사용에 제한이 많아 관리가 힘들다고 전했다.
이로 인한 마취전문의 고용난으로 마취 위험성이 높은 영역에서 비마취의나 마취전문간호사 같은 무자격자에 의한 마취가 시행되고 있어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
연 회장은 "본 학회는 마취전문의 기피 현상과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는 의료계의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적 방법으로 변화를 유도하고 환자의 안전을 수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련 대책으로 개원으로 부족해진 마취전문의를 보충할 인력 양성을 위해 정원책정 TO 증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기존 진료 외에도 ▲각종 시술·검사를 위한 진정영역 ▲코로나19 환자 수술 마취 및 산소요법·인공호흡기 치료 ▲수술 전 마취평가 클리닉 등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 회장은 "신설 의과대학에도 마취통증의학과 수련을 위한 전공의 정원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공공병원, 비수도권 병원도 충분한 지도전문의와 시설을 갖췄다면 적절한 정원을 분배해야 한다"며"이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필수의료 인력 양성·재배치 및 확충방안에도 부합한다. 복지부에 이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수가 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취전문의 기피 현상은 근본적으로 저수가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분만병원의 근무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마취전문의가 늘어난다고 해도 인력 유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도서지역은 물론 수도권도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어 마취수가 정상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연 회장은 "학회 차원에서 전문의 초빙료 인상 및 의원·병원급 마취 수가 가산을 요청한다. 고난도·고위험 응급수술 등 필수의료에 해당하는 항목과 야간·휴일 응급수술에도 적정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본 학회는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마취실명제를 통한 불법마취 근절 등으로 환자 안전을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수호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간호사의 마취행위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이 정해지면서 이들이 마취행위를 수행할 수는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문간호사가 불법마취를 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 회장은 "수술실 CCTV가 도입된다면 이런 행위가 근절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왜 같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어떤 환자는 마취전문의에게 마취를 받고 어떤 환자는 무면허의료 행위의 피해자가 돼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전문간호사 마취에 관한 사안이 일단락됐으므로 이런 범죄행위에 대한 당국의 엄격한 단속과 강력한 처벌 및 경제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복지부 진료지원인력(PA) 업무범위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에서 처방된 마취제는 투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것과 관련해선 부분적으로 수긍했다.
대부분 마취제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직접 투여하는 것이 옳지만, 전신 마취 유도나 마취 회복 시 불가피하게 구두로 투여 지시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드물더라도 전달 불량으로 약물 투여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수 있어 이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약물투여 직전 약물 용량 재확인 및 투여 경로 등을 복창하게 하는 등 시스템 관리로 문제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뉴얼 만으로 PA가 단독 투여하는 상황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연 회장의 임기가 시작되는 만큼 중점사업으로 마취통증의학회 학술지 'Korean Journal of Anesthesiology'를 세계 3위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또 ▲정부 필수의료 대책 논의 참여 ▲마취전문의 근무여건 개선을 위한 정책적 대안 제시 ▲외과계열과의 상생 ▲마취 프리랜서 팀 조직화 ▲표준마취안전기준 확립 ▲소아마취 및 진정 안전성 제고 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연 회장은 "현재 본 학회에서 추진 중인 통증 분과전문의 제도도 통증 진료와 관련된 타과의 반대로 쉽지는 않겠지만, 소통을 통해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며 "무엇보다 회원들이 학회의 존재를 피부로 느끼고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마취통증의학회를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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