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에 대한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NIP)을 남성까지 확대 실시할 것인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이미 만 12세 이상 여아를 대상으로 NIP가 시행되는 가운데 지난해 정부가 만 13~17세(04~08년생)와 저소득층 여성을 대상으로 만 18~26세까지 확대한 상황. 미국 등 해외에서는 HPV 백신을 남성에게도 접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논의 단계에 있는 상태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 12세 이상 남성도 NIP접종을 공약으로 밝히면서 실현가능성에 대해 주목도가 높은 상황.
이로 인해 질병관리청은 HPV 남성 청소년 대상 확대를 대상으로 비용효과성 등을 분석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질병청 예방접종관리과 권근용 과장은 "새 정부는 HPV 백신 남아 접종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근거 확보 작업에 나선 상태로, 내년 초까지 예산안에 반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HPV 백신의 비용이 적지 않은 만큼 결론을 내리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HPV 관련 남성 질환 증가세…집단면역 고려 남여 접종 필요"
HPV의 특징과 NIP의 시행으로 국내에는 HPV 백신이 자궁경부암백신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HPV는 남성도 감염되는 바이러스이다. 대표적인 질환은 생식기 사마귀.
지난 3일 MSD가 'HPV 질환의 A to Z'를 주제로 개최한 미디어세션에서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 이승주 회장(성빈센트병원 비뇨의학과)은 남성의 HPV 백신 접종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국내 생식기 사마귀 유병률은 2010년 2만5208명에서 2019년 6만5203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까지 지난 10년간 약 3배 증가했다.
이중 만 18-24세의 생식기 사마귀 유병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았으나 만 25-29세에서는 남성에서 가장 높았다. 국내 생식기 사마귀는 젊은 연령층에서 주로 발병되고 특히 남성이 여성보다 발병률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이 회장은 "최근에는 HPV과 관련된 질환으로 구인두암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자궁경부암은 선별검사를 통해 미리 발견할 수 있지만 구인두암의 경우 현재로선 암이 되기 전까지 미리 발견할 방법이 없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의 남녀 구강 HPV 감염 연령별 유병률 조사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구강 HPV 감염 유병률이 높았으며, 2013-2017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통계에서도 HPV 관련 암에서 남성의 구인두암이 여성 자궁경부암 건 수 역전이 확인 가능했다.
이 회장은 "남성과 관련된 HPV 질환이 늘어나면서 예방을 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고, 남성 구인두암 예방측면에서도 백신 접종이 획기적일 수 있다는 게 의학계의 판단이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현재 실시하고 있는 여성 HPV 백신 NIP를 통한 자궁경부암 예방의 측면에서도 남성 접종의 의미 있다는 시각.
2016년 란셋(Lancet)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HPV 백신 접종을 완료했을 때 70년 후 HPV 유병률이 남성 여성에서 모두 감소하며 여성의 80%가 접종을 완료했을 경우 남녀 모두에서 HPV 유병률이 80~100%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에 조사결과 HPV 백신 사업 첫해 2003년생의 1차 접종률은 61.5%였으며, 2017년 대상자인 2004년생의 경우 1차 접종률이 72.6%였다. 2018년 대상자인 2005년생은 87.2%가 이미 백신을 맞았다.
매년 HPV 백신을 접종률이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국내의 HPV 유병률 감소를 예상할 수 있지만 집단면역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여성과 남성이 동시에 접종하는 것이 도 효과적이라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MSD에 따르면 유럽과 벨기에에서 모델링 예측 연구를 실시한 결과 남녀 모두 HPV 백신 접종 시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아의 높은 접종률을 유지하면서 비용 효율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 HPV 백신 접종률이 첫 번째 접종은 80%를 넘겼지만 두 번째 접종까지 고려할 경우는 그보다 낮은 수치로 인지하고 있다"며 "국내에 HPV 백신 NIP를 시작한지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전체 집단면역 형성을 고려했을 때 남성 접종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남성 질환 예방에도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관건은 비용 효과성…2019년 연구 뒤집을 수 있을까?
HPV NIP를 시행중인 110개 국 중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포함한 52개국은 여아에서 남아까지 접종 대상을 확대(2022년 3월 기준)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같은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정부 역시 HPV NIP 확대를 국정과제로 지정해 추진하고 있는 만큼 제도 시행에 있어 긍정적인 요소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비용효과성에 대한 부분으로 현재 질병청은 남아 접종이 결정되면 매년 190억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최근에 발표된 연구는 지난 2019년 질병관리청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진행한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국가예방접종 대상 확대방안'이다.
해당 연구에서 국내 12세 남아에서의 HPV 관련 질환 현황 및 질병부담을 산출해 백신 비용과 비교우위성을 검토한 결과 2018년 12세남아 24만 명을 대상으로 HPV 백신을 접종했을 때 투입비용은 450억원이 소요됐다.
하지만 HPV 관련 질병비용은 200억원으로, 절감 가능한 최대비용은 투여비용의 50%에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여아의 경우, 12세 여아 22만 명을 대상으로 420억 원을 투입해 관련 질환비용을 최대 1600억원으로 약 4배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또 남아 및 여아에게 HPV 백신을 함께 접종할 경우, 46만 명에게 약 900억 원을 투입해 HPV 관련 질환자는 최대 28만 명, HPV 관련 질환비용은 최대 1800억 원 감소(투입비용 대비 약 2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시간이 더 지난 만큼 질병 부담 예측도는 현재와 다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여아 접종과 관련해 연령확대나 접종률 향상 등의 전략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결국 올해 상반기 발표되는 연구과제의 결과에 따라서 남성 HPV 백신 NIP의 향방도 갈릴 가능성이 높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소아감염내과 A교수는 "HPV 백신을 남성에게 접종하게 되면 군집방어 측면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옮기는 위험을 낮추는 추가적인 보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백신의 확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현재 HPV 백신이 거의 유일하게 한쪽 성에만 접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과거 풍진백신 역시 비슷한 논의가 있었는데 근본적으로 전체 풍진을 줄이는 효과를 거둔 만큼 어떤 것이 더 나을 지는 비용효과성에 대한 결과를 봐야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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