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이하 SMA)은 진행성 근위축 및 마비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희귀 유전질환으로 최근 국내에도 글로벌 제약사들의 치료제가 급여로 적용되면서 임상현장에서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도입된 치료제의 임상적 효과와 활용도 보다 '가격'에 대한 이슈에 매몰되면서 치료제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위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재정적으로도 부담인 초고가 치료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키 위해서라도 SMA를 조기진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메디칼타임즈는 최근 벨기에 루벤가톨릭대병원 소아신경의학과 리스벳 드 와엘(Liesbeth De Waele) 교수를 만나 SMA 조기진단을 위한 신생아 선별검사(Newborn screening, NBS) 필요성을 들어봤다.
진단 늦어질수록 치료 어려운 SMA
SMA는 환아의 운동 신경세포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가장 중증의 유형이면서 전체 환자의 50%에 해당하는 SMA 타입 1는 생후 6개월 전에 증상이 나타난다.
전체 환자 중 30%를 차지하는 SMA 타입 2는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증상이 발현되고, 타입 1에 비해서는 경미한 증상과 느린 질환 진행 속도를 보인다.
나머지 10~20%에 해당하는 타입 3은 18개월 이후에 발현되고 질환의 진행 속도 역시 더 느리다.
리스벳 드 와엘 교수는 "SMA 중 가장 중증인 타입 1의 경우 생후 몇 주 혹은 몇 개월까지는 아이가 정상 발달을 하는 것으로 보이다가 어느 순간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목을 가누지 못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며 "이때부터 운동 기능이 더 이상 발달하지 않고, 질환이 좀 더 진행됨에 따라 운동 신경세포가 점점 사멸한다"고 특징을 설명했다.
이어 "처음부터 아이가 발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상 발달을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더 발달이 멈추거나 퇴행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이러한 증상들을 통해 진단하게 되면 이미 치료를 가장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늦은 단계라는 것이다. 증상이 나타나기까지는 벌써 운동 신경세포의 50%가 이미 사멸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즉 증상이 나타나 의료기관을 방문, 검사를 통해 발견했더라도 현재로서는 적합한 치료시기를 놓쳤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진단 및 치료를 진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질환이기도 하다.
실제로 벨기에 등 유럽의 경우 경제성 평가를 통해 선별검사가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신생아 선별검사를 급여로 적용 중이다. 벨기에의 비용효과성을 평가한 데이터에 따르면, 척수성 근위축증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질환 관련 비용을 약 75% 줄일 수 있다고 보고된다.
정확한 금액을 산출한 영국의 경우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우리나라 금액으로 연간 약 1011억원을 절감하고, 529년의 QALY(Quality Adjusted Life Year)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리사벳 드 와엘 교수는 "벨기에에서는 급여로 적용하기 전 선행 연구를 통해 신생아 선별검사가 치료에서의 효과나 삶의 질뿐만 아니라 보건경제성 측면에서도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지자체에서 먼저 신생아 선별검사를 급여화 했고, 2022년 12월부터는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0번 검사를 해서 10번 다 음성이 나오더라도 한 명의 환아를 놓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기 때문"이라며 "특히 신경세포 사멸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SMA 환아에게는 1분 1초가 중요하다. 사용 가능한 치료제를 통해 조치를 취해줄 수 있기 때문에 검사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치료제만 급여? 비용효과성 상 맞지 않다"
벨기에 등 유럽과 달리 상대적으로 국내의 경우 신생아 선별검사에 SMA은 제외돼 있는 상황.
국내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이뤄지는 신생아 선별검사의 경우 대부분 대사성 질환에 대한 검사에 집중돼 있다. 대사성 질환은 아이가 특정 효소를 얼마나 가졌는지에 대한 검사로 검사 대상 질환 중 다수가 치료제가 없는 질환이다.
다시 말해, 진단이 되도 치료제가 없는 질환에 선별검사가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치료제가 도입된 질환에 대한 검사는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임상현장에서는 흔한 말로 '전기 차는 지원해주고 운전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리사벳 드 와엘 교수는 "대사성 질환과 달리 SMA에 대한 검사는 유전자 선별 검사"라며 "비용을 들여 검사를 진행해도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없는 질환보다는 실질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을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벨기에는 정부에서 급여를 해주는 검사 항목에 포함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이 치료제가 있는 질환인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재정의 측면에서도 검사에 투자를 했다면 이를 통해 치료까지 이어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며 "치료제를 통해 가장 좋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신생아 선별검사와 치료제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 신생아 선별검사 없는 SMA 치료제는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장기적으로 SMA 신생아 선별검사 도입하기 위해선 임상현장에서의 의료전달체계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졸겐스마(오나셈노진 아베파르보벡)를 필두로 에브리스디(리스디플람), 스핀라자(뉴시너센)까지 초고가 치료제가 급여로 적용된 만큼 환아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제를 적재적소에 쓰이기 위해선 의료전달체계도 이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사벳 드 와엘 교수는 "벨기에도 시스템을 설계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7개의 신경근육전문센터 전문의들이 수시로 연락하며 SMA 환자들을 발견 시 즉각적인 전원과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며 "SMA 환자에게는 1분 1초도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료진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현 시스템을 세팅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국내와 마찬가지로 벨기에서도 SMA 치료제가 고가인 탓에 의료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동시에 조기 검사만이 고가 치료제의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리사벳 드 와엘 교수는 "벨기에의 경우에도 고가의 치료제이기 때문에 이동이나 투여 시 매우 조심해서 사용하고 있다. 부모들도 고가이고, 제대로 투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어서 신중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치료제를 원내 약국에서 약을 제조해 환자가 있는 병동까지 이동하는 것조차 모두가 꺼리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이동한다"고 전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고가 치료제를 급여로 적용한 상황에서 최상의 치료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증상 발현 전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생아 선별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서 확인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즉각적으로 추가 검사와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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