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하면 여러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나는 곤돌라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물의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고 유유히 수로를 지나가며, 곤돌리에의 칸초네 한 곡을 감상하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와링턴 콜레스콧의 그림에는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검은 곤돌라 (Dark Gondola)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 죽다'라는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물 위에 저 멀리 베네치아의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배경으로, 짙고 어두운 무채색으로 전면을 드러내는 검은 곤돌라는 마치 보는 이로 하여금 관 속을 들여다 보는 듯한 섬득한 느낌을 준다.
곤돌라의 어두운 모습은 소설의 주인공인 아센바흐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 타락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곤돌라가 베네치아 운하를 부유하는 모습은 주인공이 점차 어두운 운명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심리적 피로와 권태를 느끼던 독일인 구스타프 아센바흐의 이야기이다. 약속은 확실히 지키고, 계획을 정확하게 진행하며,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고수하던 아센바흐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베네치아의 리도 섬으로 떠난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검은 곤돌라를 타고 도착해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이 도시에서 폴란드 소년 타지오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사로 잡힌다.
원칙과 합리성을 중시하던 그가 즉흥적이고 비합리적이고 관능적인 현실을 접하면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본다. 도시에는 감염병이 퍼지고 있었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떠나지 않고 남기로 한다. 결국 아센바흐는 타지오에 대한 집착 속에서 자신을 방치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무력감 속에 감염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감염병 역사를 배경으로 인간 욕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토마스 만은 소설에서 아센바흐와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상징적으로 연결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신앙을 위해 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교자로서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지만, 아센바흐는 타지오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며 인간적인 욕망에 얽매인다. 이 두 인물의 대비는 아센바흐의 비극성을 부각시키며, 감염병 시대의 인간 욕망과 초월적 가치를 성찰하게 한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고통 속에서도 신념을 지킨 순교자이자 감염병의 수호성인으로 예술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조스 리페랭스의 그림에서는 온몸에 화살을 맞은 채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그림의 하단에는 페스트로 이미 사망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시신을 운반하고 매장하는 과정에서 다시
사람이 쓰러지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부 반점과 발진이 나타나 있어 페스트 감염의 흔적이 드러나며, 중세 사람들이 겪었던 감염병의 공포와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베네치아는 중세와 근대에 유럽의 주요 무역 중심지로서 여러 차례 감염병의 유입을 겸험했고, 특히 14-16 세기는 페스트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며 큰 피해를 입었다. 오늘날에도 카니발 축제에서는 메디코 델라 페스테(Medico Della Peste)라는 새부리 모양의 의사 가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과거 감염병 시대의 고통의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토마스 만은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도시의 화려함 속에 숨겨진 치명적인 감염병을 묘사하며 인간의 나약함과 욕망의 위험성을 드러냈다.
감염병을 배경으로한 또 다른 작품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있다.
'베네치아에서 죽다'가 아센바흐 개인의 몰락을 통해 욕망의 위험을 경고하며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다면, '페스트'는 감염병 속에서 공동체의 연대와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다. 카뮈는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헌신적인 의사 리외와 협력자 타루 등을 통해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는 팬데믹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서로 연대하고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는 위기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덕목이다. '페스트'의 의사 리외와 '베네치아에서 죽다'의 아센바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염병을 대면하며, 그들은 우리에게 공존의 지혜와 개인의 책임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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