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실손보험 관련 정책을 두고 의료계 공분이 깊어지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이어 혼합진료 금지를 통한 실손보험 청구 제한뿐 아니라, 최근에는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재정을 논의하는 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사보험단체를 포함하려 하며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의료관계자들은 "윤 정부의 실손보험 키워주기 정책 폐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 복지부, 삼성생명보험노조 등 민간보험단체 포함 160여곳 공문 발송
최근 보건복지부는 제9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구성을 위해 가입자와 공급자단체 160여곳에 위원 추천 공문을 발송했다.
지난 3년 동안 활동하던 제8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일부 위원들의 임기가 오는 12월 31일로 만료되기 때문.하지만 수신 기관에 '삼성생명보험노동조합' 등 민간보험단체가 포함된 것이 확인되며,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공문을 받은 민간손해보험사단체 또는 생명보험사단체는 구체적으로 삼성화재노동조합, 삼성생명보험노동조합,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동조합 등이다.
이 외에도 가입자단체 대표로 전국노동조합총연맹, 국민노동조합,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여성소비자연합 등이 포함됐다.
이에 의료계는 공보험을 논의하는데 사보험 관계자가 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건정심에 사보험 관계자를 위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의료민영화 추진의 단초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한 관계자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성 위원은 겉으로 봤을 때 공급자단체 8명, 가입자단체 8명, 공익위원 8명으로 균형이 맞는 듯 보이지만, 공익위원 중 2명은 공무원이고 6명은 정부 추천 위원으로 사실상 협상에 있어 정부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의도에 맞게 민간보험사 관계자가 위원으로 이름을 올린다면 그야말로 민간보험사 키워주기, 배불리기 밖에는 되지 않는다"며 "심지어 향후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우려도 높다"고 지적했다.
병원계 한 관계자 또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라며 "건정심에 민간보험단체를 포함하는 것은 매우 놀랍고 분노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시의사회 관계자는 "건정심 위원에 사보험 관계자가 참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현재 국내 의료체계를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건보재정을 고려했을 때 모든 의료행위가 건강보험 대상으로 지정될 수 없기 때문에 국민들은 실손보험으로 혜택을 보고, 의사 역시 저수가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환자 실손보험에 의해 일부 이득을 얻고 있다"며 "실손보험이 의료계와 아주 깊은 이해관계를 보이고 있어 일부 이해되는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의료계 목소리 중심 재설계해야"
또한 윤석열 정부는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정책을 지난 10월부터 강행하고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진료 영수증, 진단서 등 서류를 일일이 떼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보험개발원이 운영하는 '실손24' 앱을 통해 손쉽게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서비스다.
현 정부 민생과제 중 하나로 지난해 10월 국회가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실손 청구 간소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됐으며, 병상 30개 이상 병원과 보건소 등 7725개 요양기관이 대상이다. 내년 10월부터는 동네 의원과 약국으로 확대한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는 출시 한 달 만에 6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이 보험개발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실손 청구 간소화 서비스 출시 이후 이달 22일까지 61만3030명이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인 '실손24'에 가입했다. 22일까지 보험금 청구가 이뤄진 건수 역시 2만6052건에 달했다.
하지만 병원들의 참여가 저조한 점은 여전히 과제로 꼽힌다.
지난달 25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바로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은 210개였는데 한 달 새 40곳이 늘어 250개 병원에서 청구 전산화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전체 대상기관인 7725개 병원급 요양기관의 3%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료계는 실손24앱이 아닌 민간 핀테크 업체를 통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참여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손24앱만을 이용하라는 정부의 방침이 오히려 국민 편의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는 반드시 정부앱을 이용해 진행할 필요가 없고, 많은 중소병원들은 민간회사 등을 이용해 환자 편의를 고려해 간편 청구를 제공하고 있다"며 "오히려 정부앱만을 고집해 서비스를 진행하려는 것이 국민 편의를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험업계도 전산시스템 투자 문제 등으로 참여가 지지부진한데 정부가 민간보험사의 이야기를 주로 듣고 정책을 추진해 의료현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며 "의료계 목소리를 중심으로 제도를 재설계해 운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 혼합진료 금지 12월 발표…"국민 불편 담보 보험사 이익 창출"
끝으로, 의료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정부의 실손보험정책은 12월 발표 예정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비급여·실손보험 제도 개선 방안'이다.
최근 정부는 실손보험 제도 개선 방안으로 '혼합진료 금지'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비급여 진료의 과다 청구 및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정부 혼합진료 금지 정책은 올해 2월 발표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 첫 공개됐다. 급여 의료행위에 비급여 행위나 치료재료 등을 함께 제공할 경우 일부 비중증 진료에 대해서는 보험금 청구에 제한을 두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예를 들어 환자가 정형외과에서 근육이나 관절 통증과 관련한 치료를 받을 때 급여 항목인 물리치료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비급여항목인 도수치료를 금지한다.
실손보험 지출 목록에 상단을 차지하는 도수치료, 백내장수술(비급여 다초점렌즈 포함), 성형 분야 비밸브재건술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도 기준 실손보험 지출 상위 비급여 혼합진료 비율은 ▲도수치료 89.4% ▲백내장 수술 100% ▲체외충격파 95.6% ▲비밸브재건술·하이푸·맘모톰절제술 100% ▲하지정맥류 96.7% 등이다.
이에 개원가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정책은 국민의 치료선택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실손보험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회장은 "혼합진료 금지는 민간보험사와 실손보험사의 이익 창출을 위해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불편을 가중시키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 또한 "비급여 영역은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맞다"며 "정부의 과도한 간섭 및 제한은 필수의료 살리기가 아닌 전반적인 의료체계를 붕괴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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