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지도 십수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백건의 노동관련 부당행위에 대한 '심판'을 하는데 생각을 보탰다.
심판의견을 주고 나오면 늘 걷는다.
전철역을 지나도 더 걷는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고 답답해서 계속 걷는다.
모회사 광고처럼 ‘유쾌 상쾌 통쾌’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아쉬운 점이 많다.
왜 그럴까?
지노위 심판사건모습은 가지 각색인데 공통점이 두개 보인다
하나는 ‘갈등’이고 나머지 하나는 ‘공감부족’이다.
신청인과 피신청인에게 질문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그냥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란 진정어린 단 두마디로 해결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의 골과 폭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결국은 “네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의 판단을 외부기관에 의탁한다.
일차로 지방노동위원회의 심판을 구한다.
그것도 모자라면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구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행정심판으로 넘어가 판사에게 판결을 묻는 지경에 이른다.
그쯤되면 . 이판사판, 오기가 생긴다.
“그래 어디 끝까지 해보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직장에서 시작한 사소한 다툼이 증폭되어 1,2년을 노동위, 법정싸움으로 보낸다.
신청인이든 피신청인이든 마음도 체력도 돈도 고갈된다.
피신청인은 대부분 회사여서 조직전체가 관여한다.
인사부서, 컴플라인부서, 법무팀, 자문노무사 등 투입되는 인원이 많다.
힘들면 선수(회사측 책임자)도 교체하고 코치(노무사,변호인)도 고용한다.
회사는 얼마나 손해가 많은가?
관련직원들도 피로도가 쌓인다
회사도 큰 스크래치가 난다
신청인은 어떤가?
자기가 몸 담고 있는, 혹은 몸 담았던 회사와 홀홀단신으로 싸우는 것이다.
물론 코치도 고용할 수 있다.
이래저래 비용이 많이 든다.
더욱 힘든 것은 신청인이 재직중이면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고
사건이 지노위나 행정심판등으로 이어지는 긴시간 동안
일거수일투족이 감시아닌 감시를 받는다.
심판이나 판정에서 이긴다 한들 그동안 못 받은 월급을 받는 것외에 무슨 이득이 있을까?
회사를 상대로 이긴 사람이니 동료들이 ‘와우 대단한 사람이네’라고 반길까?
그렇지 않다.
설사 이겼다고 해도 회사에 나가면 그 따가운 시선들을 감수해야 하고
동료들의 비협조? 은근왕따?도 감내해야 한다.
내가 신청인이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와중에 제일 손해 보는 것은 회사다
이런 조직에서 무슨 생산성향상을 기대하겠는가?
무늬만 조직이고 모래알조직이다
조직이 일방적으로 거짓을 강요한다면 사법기관을 통해서
‘실체적 진실’을 따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외는 거의 갈등이 사건의 중심이다
조직간 갈등, 사람간의 갈등, 내적갈등들은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 직장이다.
얼마나 갈등이 많겠는가?
일반적으로 ‘갈등은 나쁘다’라고 본다.
그렇지 않다.
갈등자체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가치중립’이다.
갈등을 서로 협력해서 잘 해결하면 과거보다 더 좋은 관계가 되고
잘 해결이 안되면 앙금이 남고 갈등전보다 더 안 좋은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갈등의 또하나의 특징은 양 당사자간의 상호작용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갈등 잘 해결’에는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있다.
그렇게 보면 이 긴 법정싸움의 원인은 하나다.
공감부족.
공감은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이나 괴로움을 알아차리고,
그에 대해 동일한 느낌과 정서를 갖는 것이고
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응답행동을 취하는 일련의 대인관계
과정을 의미한다고 학자들은 정의한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공감 성향은 점차 감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학계의 조사연구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다.
(김주상&박상언,2023; Jaki,2019/2022; Konrath, O’Brien, & Hsing, 2011)
내가 봐도 맞는 지적이다.
‘갈등해결’이란 자체가 미숙하고 낯설다.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사회에서도 갈등을 외면하지
직면confront하는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왜 해?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제가요 이걸요 왜요 지금요….다 귀찮아 한다.
갈등이 불거지면 바로 ‘법으로 하자, 법으로 해’하면서 즉각 외부기관에 의탁한다.
그래서 얻은 것은 ‘고난의 행군’뿐이다.
내문제를 제3자에게 해결해 달라고 구걸하는 격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으면 아는 만큼 갈등의 폭이 적어들지 않을까?
현장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읽어 낼 수 있을까?
‘경청’이다.
경청傾聽은 한자 그대로 몸을 상대방에게 기우려 듣는 것이다.
그리해야 조금 ‘공감’의 문을 열 수 있다.
노동위 심판은 당일 저녁이면 결과가 SNS로 본인에게 통보된다.
신청인이 집에도 도착하기전에 받게 된다.
그 마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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