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비뇨의학과 의사로 30년 넘게 진료를 하고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러 사유로 성매개감염병(이하 성병)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게 되었고 성병 환자에 대한 진료를 많이 하게 되었다.
비뇨의학과 전공의 시절부터 대학원을 다니면서 석·박사 대학원 모두 미생물학을 공부하였고, 특히 석사 논문이 PCR 검사법을 이용한 클라미디아 요도염 연구였다. 이후 공중보건의로 어느 지역 시 보건소에서 근무를 하면서 보건증 발급 및 관련 진료를 하였고, 이후 종합병원 근무 시에도 병원 특성상 젊은 남성 환자 진료가 많았다.
의원에서 환자 진료를 한 지도 벌써 5년이고,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질병관리청 성매개감염병 예방 관리 자문위원을 하면서 어쩌면 당연하게 성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부쩍 과거와 많이 달라진 국내 성병 관련 상황들을 보면서 많은 걱정이 앞선다.
첫 번째, 성병 환자가 계속 증가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와 질병관리청에서 매년 발표하는 성매개감염병 연보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성병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이 최근 매독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는 종종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는데, 반면 우리나라 성병 증가에 대한 기사는 거의 찾기 어렵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느끼는 것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 임질 환자는 줄었지만 HIV 감염자(AIDS 감염자), 매독 환자 진료 숫자가 많이 늘었다. 특히 헤르페스 2형 환자, HPV(Human Papilloma Virus, 사람유두종바이러스)에 의한 곤지름 환자들이 많이 증가하였다.
국내 성병 증가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추정이 가능하지만 내가 느끼는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젊은 연령층의 자유로운 성문화이다. 요즘 젊은 연령층은 과거와 다르게 이성 간의 만남에서 빠르게 성관계까지 진행이 된다. 이성 간의 친구는 거의 성관계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그리고 과거보다 확실히 콘돔 사용을 꺼리는 문화도 있는 것 같다. 또한 성경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도 작용하는 것 같다.
더 적은 숫자지만 고령자에서도 평균 수명의 증가와 발기부전 보조 치료제 영향으로 성관계 인원과 빈도가 증가하면서 성병 환자들이 과거보다는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바이러스성 성병이 증가한 이유에는 전반적으로 요즘 젊은 층의 면역력 저하도 기인하는 것 같고 이는 여러 가지 사회적 분위기로 인한 육체적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이 원인이라고 추정한다. 전반적인 성병 증가의 또 다른 이유로 과거에 비해 낮은 포경 수술 시행 비율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일부 근거 논문도 있고 현장에서 느끼는 차이는 분명히 있다.
두 번째, 국제화 시대에 다양한 교류가 늘면서 내국인의 해외여행, 국내 유입 외국 관광객, 국내 유입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등이 꾸준히 증가하여 외국인과의 성관계가 늘면서 국내 성병에 대한 양상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는 성병 환자의 증가에도 영향을 주지만 성병 치료가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병증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요도염 원인균에 대한 항생제 내성이 외국이 더 높은 편이고, 요즘 문제가 되는 HPV에 의한 곤지름 환자들 진료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외국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 경우가 더 병증이 급속하게 심해지고 재발이 잘 되는 느낌이 있다.
세 번째, 많은 사람들을 진료하다 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개인마다 다르지만 성병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그냥 단순하게 ‘걸렸으면 치료하면 되죠’, ‘내가 다른 사람 감염시켜도 다시 볼 사람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데요’, 이런 사람들도 있고, 콘돔을 왜 사용 안 하는지 물어보면 ‘귀찮다.’고 하고 ‘여성이 싫어한다.’고도 한다.
일부 환자들은 진료실 들어오자마자 ‘소변 STD PCR 검사(요도염 원인균 검사)하러 왔어요, 이것만 해주세요’라고 하기도 하고 ‘치료하는 동안에는 관계하면 안 되나요?’라고 묻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진료하기가 싫어진다.
얼마 전 HIV 감염자가 임질이 걸려서 왔는데 내가 너무 기가 막혀서 약간 야단치듯 이야기를 했더니 ‘HIV 감염자라서 콘돔은 썼는데 그래도 걸렸어요’라고 했다. 이 환자는 구강성교를 통해 임질 감염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요즘 의외로 구강 성교에 의해서도 성병 감염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
HIV 감염은 평생 치료가 안 되는 감염이고, 헤르페스 2형도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성병이며, 매독은 치료는 가능하지만 혈액검사에서 평생 흔적이 남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병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부적절한 성관계 후 본인들이 걱정하는 건 단순하게 요도염만 생각하고 진료를 하러 온다. 성병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 있었다면 모든 성병 검사를 다 하는 것이 원칙이다.
네 번째, 반대로 지나치게 성병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도 문제다. 수시로 검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일을 안 만들면 되는데 진료비와 검사비가 저렴하니까 수시로 온다. 막을 방법은 없다.
그리고 일부 의사들이 그런 경우가 있는데 지나치게 환자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고, 넘쳐나는 온라인상의 많은 정보들이 여러 오해를 일으키는 것도 문제다. 정보화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들, 무지하고 근거 없는 개인의 경험담을 의학적 의견같이 남기고 이를 보고 믿는 사람들, 이런 사회적 현상이 갈수록 부정적으로 심각해지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HPV 감염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HPV는 여러 종류의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바이러스고, 여성은 남성과 다르게 감염만으로도 주기적 관찰이나 검사가 필요하지만 남성인 경우는 조금 다르다.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의학적 견해는 HPV는 매우 흔히 존재하는 바이러스이고 피부나 점막을 통해 감염이 되지만 대부분은 자연 소멸될 수 있고 일부 바이러스가 남아 있다가 다양한 변화를 통해 다양한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환자들은 의학적 타당성이 떨어지는, 즉 병변도 없는 상태에서도 검사를 하러 온다.
다섯 번째,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존중과 양성 평등 인식은 당연하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성병에 대해서는 남성에게만 책임을 묻고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분위기가 있다.
필자는 이전부터 여러 기관에서 여러 연령대나 직종에 대해 성병 강의를 상당히 많이 했다. 항상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있다. ‘모든 성병은 의학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취약하고 더 큰 피해를 본다. 따라서 남성이 본인을 위해서도 당연하지만 여성을 위해서 성병 감염이나 전파 방지에 더 주의를 해야 한다.’이다.
그런데 요즘 남성 환자들이 와서 부인이나 여자친구가 ‘산부인과 검사에서 무슨 균이 나왔는데 내 책임이라고 검사하고 치료하라고 했다.’ 또는 ‘HPV 감염되었다고 내가 옮겨 주었다고 검사해 보라고 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잔뜩 긴장하고 겁먹고 걱정을 하고 오는데, 가져온 여성의 검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이 여성 질에 존재하는 공생균들이고 설사 남자에게 검사를 해서 같은 균이 나오더라도 오히려 남자가 여자에게서 받아서 나오는 균이라서 남자가 억울해해야 할 균들이다.
HPV도 병변이 없는 경우에는 남자에서 검사를 하더라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2형 헤르페스도 감염되면 평생 몸에 잠복하는 병이라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민감해하는 성병인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남성은 병변이 나타나면 대부분 본인이 육안으로 볼 수 있고 증상을 느끼기 때문에 성관계를 피하게 되는데, 여성들은 발현이 되더라도 육안으로 확인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증상을 못 느끼는 경우에는 모르고 성관계를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모든 책임을 남성에게만 묻는 것은 곤란하다.
진료실에서 느끼는 요즘 우리나라 성병 현황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써 보았다. 이런 모든 문제들을 단시간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전파 방지에 대한 꾸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런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 같고, 사회적 인식 전환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의사들이 성병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직접적으로 성병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비뇨의학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 의료인들에 대한 정확한 성병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들에 대한 관리도 반드시 필요하다. 성병 관리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가능한 많은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이해시키는 것이지만 매우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하고 사회적으로 다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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