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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학생이지만

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발행날짜: 2025-10-20 05:30:00

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강지민
투비닥터 편집팀

"그래, 지민이는 그래서 언제 의사가 되니?"

반수를 포함해 의대생이 된 지 벌써 햇수로 6년째, 명절마다 듣는 단골 질문 1위다.

"아유, 아빠! 아직 한참 남았지~"

뒤에 이어지는 엄마의 한마디는 덤이다. 그렇다. 앞으로 실습도 돌아야 하고 국가고시도 봐야 하니, 아무리 못해도 최소 2년 반가량은 남았다.

양가를 통틀어 어쩌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의대에 진학한 사람이 되었다. 엄청난 꿈을 가지고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은 언제나 어른들의 큰 관심사이며, 의사라는 직업은 그 자체로 사회적 선망을 얻기 쉽기에 매번 친척들을 뵐 때마다 많은 질문을 받곤 했다. 요새는 어떤 과가 좋다더라, 어떤 과가 유행한다더라, 학교생활은 어떠냐 등등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주워들은 말들로 이렇다 저렇다 대답한 지 벌써 수년째다.

조금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는 이따금씩 '의학적인' 질문을 받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아는 게 없어 당황하기 일쑤였다. 정말로 놀기 바빠 아는 게 없던 예과 시절은 물론이고, 학교 편제상 본1 때는 기초의학만 배웠기에 어른들이 갑상선암을 물어오셔도 thyroid gland의 발생학적 기원만 알았던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휴학 기간을 거치며 상당수는 까먹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올해 추석은 조금 달랐다.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협심증을 앓고 있으셔서 꾸준히 다니시던 외래 이야기를 꺼내셨다. 매일 혈압을 재고 체중을 기록하라느니, 운동을 하라느니 하는 말씀이 참 귀찮다고 투덜거리셨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할아버지, 그래도 그냥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으셔야죠" 하고 웃으며 넘겼을 텐데,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학교에서 배운 걸 떠올리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혈압과 체중 변화가 심장 부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을 드렸다. 또 친구분들이 "짜게 먹는 게 힘이 난다더라, 소금이 만병통치약이더라" 하신다기에, 나트륨이 몸속 수분을 붙잡아두어 심장이 더 힘들어진다는 걸 natriuresis 개념을 빌려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엄마가 거들어 약 봉투를 확인하고 하나하나 어떤 약인지 설명도 해드렸고, 이모들의 여러 건강 상담도 머릿속 지식을 박박 긁어내서 이것저것 말씀드렸다. 별것 아닌, 알량한 지식이었지만 어른들이 옆에서 "이래서 집안에 의사가 한 명 있어야 한다"며 반쯤은 너스레 섞인 칭찬을 해주셔서, 처음으로 '의대생으로써' 도움을 드린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필자는 올해 스물다섯 살이다. 한 번의 휴학도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칼같이 취업한 친구들도 있고, 대학을 나오지 않고 곧장 사회로 나가 벌써 어엿한 사회인이 된 친구들도 여럿 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과연 나는 언제쯤 직업을 가질까, 돈을 벌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대학을 오래 다녔는데, 나와 같이 놀던 다른 과 친구들은 다 졸업했는데도 나는 아직도 꽉 채운 2년 반이 기다리고 있다니 말이다. 사촌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해서 이제 언니, 오빠들은 다 직장에 다니고 거의 나만 대학생이다.

올해도 연휴가 끝나자마자 시험이 있어서, 아이패드에 공부할 내용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내려와 할머니 댁 한 켠에서 밀린 내분비학 공부를 했다. 어른들은 만나뵐 때마다 다들 어려운 공부, 힘든 공부한다고 나를 치켜세워 주신다.

내가 하는 공부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닌데, 이번에도 미리 했으면 될 일을 연휴를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지금까지 온 건데… 볼 때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민망하기도 하다.

지금껏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딱히 없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사회적인 시선 반쯤 그리고 전공에 대한 학문적 흥미 반이 나를 의대로 이끌었다. 그리고 의대에 진학한 지 6년째가 되는 요즘에서야 처음으로 부모님, 친척들, 아끼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한두 군데씩 아픈 곳이 생기고, 내가 학교에서 당연하게 배운, 너무나 간단한 지식이 꽤나 전문적인 지식임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릴 때도 안 했던 멋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앞으로 짧게는 2년 반, 길게는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얼른 '우리 집 의사'로서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다. 어디 가서 자랑하듯 우리 딸이, 우리 조카가, 우리 손녀가 괜찮은 의사다, 말씀하실 수 있게끔 제 역할을 다하는 한 명의 의사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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