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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의미에 대하여

경북의대 2학년 노정연
발행날짜: 2026-02-02 05:00:00

경북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노정연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한 해의 시작인 1월은 아마도 모두에게 매우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는 한 달이 아닐까.

1월은 마치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놀이처럼 설레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그리 화려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걸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새해가 다가오는 것이 그다지 설레지 않았다.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1월생인 나로서는 생일이 새해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고, 그렇게 점차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내 안에서 퇴색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쯤, 한 책을 만났다. 바로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였다.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등장인물 선이와 달마의 대화 장면을 고르고 싶다.

선이는 함께 지내던 휴머노이드 민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관련 연구실에 도착하여 그곳의 휴머노이드 연구원, 달마에게 민이를 되살려달라 부탁한다. 하지만 달마는 선이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과연 '재활성화'된 휴머노이드가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 같냐고. 연구원은 계속해서 묻는다.

과연 그 휴머노이드가 태어나기 전에 애초에 결정권이 있었다면 '애완용 휴머노이드'로 태어나겠다고 결정했을까? 다시 재활성화된다고 해도, 미래에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과연 재활성화하는 것이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일이 맞을까?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인 만큼 선이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윽고 달마는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생명체는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없으므로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지만, 태어나서 겪는 고통은 분명한 해악이며, 삶은 대부분 괴롭고 잠깐의 기쁨을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태어난 것은 당연히 축하해야 할 일이고, 죽음은 슬픈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좀 더 커서는 말기 암 환자분들의 사례를 보면서 어쩌면 죽음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긴 했지만, 동시에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라 말하는 달마의 시각은 이미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인 나에겐 너무 가혹하게 들렸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아득하기도 했다.

계속 고민을 거듭해야 할 주제겠지만, 달마의 질문에 대해 나의 잠정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삶이 소중하고, 의식이 있는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가치 있는 이유는 삶의 모든 것에 스스로가 '이름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에는 여러 가지 고통과 기쁨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이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어떻게 이름을 붙이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기에 한없이 기쁠 만한 일도 저주로 느껴질 수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태어나는 것은 정해진 불행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여정이 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태어난 날을, 한 인간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것이 아닐까?

태어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새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이름을 붙일 기회를 얻는다. 마치 새로운 일기장을 펼친 것처럼, 우리 앞에 쌓여 있는 수많은 여백을 하나둘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시작이 힘들고 지긋지긋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시작은 또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결말은 알 수 없겠지만, 스스로를 조금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 나간다면 이미 그 자체로도 이야기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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