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저가'.
지난 몇 년간 다국적 제약사들이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내세워 온 메시지다. 글로벌 시장 가운데 한국에 세계 최저가를 적용해 급여를 추진했다는 의미로, 국내 임상현장과 환자들에게 신약을 공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 같은 분위기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변곡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국적 제약사들을 상대로 '최혜국 약가(Most-Favored-Nation, MFN)' 정책을 압박하면서부터다. MFN은 미국 내 처방의약품 약가를 주요 선진국 중 최저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정책으로, 메디케어 파트B에서 연간 지출이 큰 고가 치료제, 특히 항암제와 면역치료제가 주요 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약값을 해외 수준으로 낮추라며 글로벌 제약사 17곳에 사실상 '60일 시한'을 제시했다. 미국 보건당국은 애브비, 암젠, 아스트라제네카, 베링거인겔하임, BMS, 일라이릴리, 독일 머크(EMD 세로노), 제넨텍, 길리어드, GSK, 존슨앤존슨, 머크(MSD), 노바티스, 노보노디스크, 화이자, 리제네론, 사노피 등 주요 제약사 대표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한 바 있다.
올해 1월 말 현재,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미국 정부와 협의에 나서 약가 인하에 상응하는 조치에 합의한 상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의 위치다. 미국의 MFN 직접 참조국에서는 한국이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미국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가 제시한 새로운 국제 약가 비교 모델에는 한국이 참조국으로 명시됐다. 메디케어 약가를 국제 기준에 연동하겠다는 구상 속에 한국 약가가 포함된 것이다.
이로 인해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 국내 허가와 급여 추진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공식적인 미국 약가 참조 대상에서는 빠졌지만, 한국의 약가 수준을 여전히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국적 제약사들 사이에서는 신약의 국내 도입 자체를 재검토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허가를 받았거나 적응증 확대를 추진 중인 치료제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추가 적응증에 급여를 적용하려면 약가 인하가 불가피하지만, 본사 차원에서는 한국 시장의 약가가 글로벌 가격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 최저가'를 내세워 국내에 도입된 신약일수록 상황은 더 복잡하다. 이미 최저가 수준인 약가에서 급여 확대를 이유로 추가 인하를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했던 세계 최저가 전략이, 오히려 급여 확대의 발목을 잡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결국 한국의 낮은 약가는 더 이상 '신약을 빨리 들여오는 무기'가 아니라, 글로벌 약가 전략 속에서 신약 도입을 늦추는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세계 최저가가 불러온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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