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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빌딩 업종제한, 어디까지 가능한가

오승준 변호사(BHSN 대표)
발행날짜: 2026-04-06 05:00:00

오승준 변호사(BHSN 대표)

[메디칼타임즈=오승준 변호사]A원장은 메디컬빌딩에 내과의원을 개원하면서 임대인으로부터 "이 건물에는 동일·유사 진료과를 추가로 입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 내용은 임대차계약서의 특약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 같은 건물에 가정의학과 의원이 입점했다. 임대인은 "가정의학과는 내과와 다른 진료과"라고 설명했고, 새로 들어온 의원은 "우리는 임대인과 계약을 체결했을 뿐, 기존 임차인과는 아무런 약정 관계가 없다"고 맞섰다.

이 상황에서 기존 임차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개원의들과 법률 상담을 할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분쟁 유형이다. 그리고 그 답은 단순한 법리 문제가 아니라, 처음 계약을 어떻게 설계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이 글에서는 메디컬빌딩에서의 유사과 입점 금지 약정이 어떤 조건에서 실질적인 권리로 기능하는지, 그리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를 판례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유사과는 입점 금지"라는 특약을 믿었는데

메디컬빌딩 임대차계약서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업종제한 문구는 대체로 아래와 같다.

"임대인은 동일·유사 진료과목의 의료기관을 본 건물에 입점시키지 않는다."

일견 짧고 명확해 보이는 문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의 불분명함으로 인해 많은 분쟁이 발생하곤 한다.

문제의 핵심은 결국 "유사"라는 단어에 있다. 임대차 특약에서 유사과의 기준을 별도로 정의해 두지 않으면, 그 해석은 고스란히 당사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내과와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와 내과의 일부 진료, 정형외과와 통증의학과처럼 실제 진료 영역이 상당 부분 겹치는 경우는 현실에서 매우 흔하다. 과 이름은 다르지만 동일한 환자군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라면, 그것이 '유사과'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갈등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이때 임대인은 "진료과목이 다르므로 특약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 기존 병원은 명백한 경쟁 상황을 체감하면서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결국 "유사과 금지 특약을 믿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제는 특약의 존재가 아니라, 그 특약이 실제 분쟁 상황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는지 여부다.

법원은 '유사과'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렇다면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유사과 여부를 판단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진료과 명칭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쟁관계를 기준으로 삼는다.

대법원은 업종제한 약정에서 업종의 의미와 영업 범위를 정할 때,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으로 획일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통상적인 영업 내용, 표준산업분류, 해당 상권의 특성과 인근 경쟁 상황 등을 종합하여 거래관념상 수인 한도를 기준으로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고 반복하여 판시해 왔다(대법원 2006다63747). 즉, A 원장의 사례에서 "내과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병원 유치는 무조건 괜찮다"는 식의 임대인측 논리는 법원에서 통하지 않는다.

최근 대법원 판결은 이 흐름을 더욱 구체화했다. 인접성, 주요 서비스와 취급 품목의 중복, 동일 고객층의 공유 등 경쟁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결합될 때 영업상 이익 침해가 경험칙상 추정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2023다270047). 메디컬빌딩에 이 논리를 대입하면, 같은 층이나 인접 호실에 위치한 의원이 동일한 질환군 환자를 대상으로 유사한 검사와 시술을 제공하고 있다면, 표방 진료과가 달라도 유사과로 평가받을 여지가 생긴다.

반대로 말하면, 분쟁 단계에서 유사과임을 주장하는 쪽은 이러한 경쟁관계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간판에 적힌 과목명만 들이밀어서는 부족하다. 상대방이 어떤 질환을 주로 진료하는지, 어떤 검사 장비를 운영하는지, 홍보 문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실제로 어떤 환자군이 방문하는지까지 증거로 갖춰야 한다. 이 소명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계약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임대차 특약만으로는 부족하다 — 분양계약·관리단 규약의 역할

메디컬빌딩의 소유·운영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단일 건물주가 층별로 임대를 놓는 임대형과, 구분소유자들이 각자의 호실을 소유하는 분양형이다. 유사과 보호의 설계 방식은 이 두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임대형 메디컬빌딩에서는 임대차 특약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임대차 특약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약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그 계약 당사자들만을 구속한다. 새로 들어온 임차인은 임대인과 별도의 계약을 맺으므로, 기존 특약만을 근거로 신규 임차인에게 직접 영업금지를 청구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 한계를 보완하는 현실적인 방법이 연쇄적인 구속 조항이다. 임대인에게 신규 임차인과 체결하는 모든 임대차계약에 동일한 업종 제한 조항을 삽입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임대인이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유사과를 입점시키면, 기존 임차인은 임대인을 상대로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과 이행청구를 할 수 있다. 신규 임차인에게 직접 청구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임대인에 대한 책임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분양형 메디컬빌딩에서는 분양계약과 관리단 규약이 훨씬 강력한 도구가 된다. 최초 분양 단계의 계약서에 업종 지정 조항을 명시해 두면, 그 효력은 이후 지위를 양수한 임차인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 대법원은 분양계약서에서 업종 제한 조항을 두어 특정 업종의 독점적 운영을 보장하는 것은 당사자의 자유에 속하고, 분양계약상 업종 제한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점포 입점자들 사이에 상호 묵시적으로 이를 수인하기로 동의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보았다(대법원 2002다45284). 나중에 분양권을 취득한 자나 임차인도 이 구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에 관리단 규약이 더해지면 보호의 폭이 더욱 넓어진다. 집합건물에서 관리단은 구분소유 관계가 성립하면 당연히 설립되고, 관리단 규약을 통해 건물 전체에 적용되는 업종 제한을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설정된 규약은 이후 입점하는 임차인들에게도 외부 공시 효과를 가지며, "알고 들어왔다"는 구속 구조를 만들어낸다. 다만 관리단 규약의 설정과 변경에는 구분소유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대법원 2011다79258). 그래서 분양형 메디컬빌딩에서는 초기 분양 단계에서부터 이 구조를 설계해 두는 것이 사후에 규약을 변경하려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임대인이 "내가 승인했으니 괜찮다"고 할 때

유사과 분쟁에서 임대인이 자주 꺼내는 카드가 있다. "관리규정에 따른 승인 절차를 거쳤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분양계약서나 운영관리규정에 '업종을 변경하거나 추가할 경우 문서로써 분양회사(관리주체)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 경우, 임대인 또는 관리주체는 자신이 그 승인을 했으므로 업종제한약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대표적인 판례(대법원 2002다45284)의 사안은 이렇다. 분양계약서에는 "지정업종과 동종 내지 유사한 업종은 개점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운영관리규정에는 "업종을 변경 또는 추가할 경우 문서로써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병존하고 있었다. 관리주체는 이 관리규정상 승인 조항을 근거로 기존 지정업종과 유사한 업종의 개점을 승인해 주었고, 이를 두고 업종제한약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리규정의 승인 조항은 지정업종 이외의 업종, 즉 지정업종과 동종·유사하지 않은 업종을 개점하는 경우의 절차를 정한 것이지, 동종·유사 업종의 개점까지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존 지정업종 입점자의 동의가 없는 한, 관리주체는 그 지정업종과 동종 또는 유사한 업종을 개점하도록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기각되는 이유

유사과가 개원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영업을 시작한 경우, 기존 임차인으로서는 영업금지가처분을 신청하는 것이 가장 신속한 대응 수단이다. 다만 실무에서는 이 가처분이 생각보다 자주 기각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피보전권리 소명 실패다. 가처분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신청인에게 보호할 권리가 존재한다는 점이 소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유사과'의 범위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은 계약서를 근거로는 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법원은 업종의 의미와 범위를 둘러싼 해석이 복잡한 경우, 이를 가처분 단계에서 단정하기보다는 본안에서 판단할 문제로 넘기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보전 필요성의 문제다. 업종제한 위반을 이유로 하는 영업금지가처분은 상대방의 영업 자체를 중단시키는 강력한 조치이기 때문에, 법원은 긴급성과 필요성을 매우 엄격하게 본다. 특히 기존 임차인이 유사과 입점 사실을 인지하고도 상당 기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법원은 이를 '긴급성이 없는 사안'으로 평가하여 보전 필요성을 부정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존 원장의 입장에서는 유사과 침해가 의심되는 순간부터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신규 임차인 모집 공고, 공사 착수, 간판 설치 등 입점 준비 단계에서부터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관련 자료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가처분 및 손해배상 청구 단계에서 유사과 해당 여부를 소명하기 위한 자료 역시 최대한 구체적으로 갖춰야 한다. 인접성, 주요 질환군과 검사 항목의 중복, 광고 문구와 클리닉 명칭의 유사성, 예약 및 운영 방식, 동일 환자군의 공유 가능성 등 경쟁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해야 비로소 설득력이 생긴다.

맺음말: 계약서 한 줄이 권리를 만든다

메디컬빌딩에서의 유사과 보호는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해야 하는 권리다. 계약 단계에서 제대로 설계되지 않은 보호는 분쟁 단계에 이르러 실효성 없는 협상 카드로 전락하기 쉽다.

실무적으로 유사과 보호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물려야 한다. 먼저 유사과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단순히 진료과 명칭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진료과 코드를 1차 기준으로 삼고, 주된 진료 영역과 핵심 검사·시술 항목을 별지로 특정하며, 인접성과 동일 환자군 공유 여부를 보조 기준으로 설정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적이다. 필요하다면 "진료과를 불문하고 특정 질환군(예: 비만치료)에 대한 온·오프라인 홍보는 제한한다"는 식으로 보호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다음으로 건물의 구조에 따라 구속력을 확보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분양형 빌딩이라면 분양계약 단계에서 업종을 지정해 두어야 하고, 집합건물이라면 관리단 규약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임대형 빌딩의 경우에는 임대인에게 동일한 업종제한 조항을 후속 임차인과의 계약에도 삽입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구속의 사슬'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이미 구두로 독점적인 입점 권한을 약속 받은 상황이라면, 계약서에 "유사과 금지"관련 문구가 실제 분쟁 상황에서도 권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지까지 점검해야 한다. 결국 계약서의 한 줄 차이가, 수년 뒤 경쟁 관계와 분쟁의 결과를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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