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국내 의료 현장이 우수한 데이터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부처 간 규제와 현장 수용성 문제로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료계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단순 기술 도입을 넘어, 데이터가 순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현장 인력의 AI 활용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제언이다.
29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복지인재원은 '2026년 의료 AI 보건의료인 직무교육사업' 관련 착수보고회를 열고 해당 사업의 의미와 과제를 조명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양성일 교수는 기조 발제를 통해 한국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AI 트랜스포메이션(AX)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제시했다.
■분절된 데이터 연결이 관건 "직군별 맞춤형 AI 역량 교육 필요"
양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세계적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며 데이터양 또한 방대하지만, 정보가 개별 의료기관 내에만 머물러 흐르지 못하는 상황을 문제로 짚었다. 기관 내 디지털화는 이뤄졌으나 기관 간 데이터가 연결되는 '망'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 의료 체계가 '제로섬' 구조에 갇혀 있다고도 진단했다. 건강 형평성 제고, 재정 안정화, 혁신적 투자라는 세 가지 과제가 모두 중요하지만, 어느 하나를 만족시키면 다른 쪽이 무너지는 상황이라는 우려다.
그는 이 같은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해법으로 AI를 통한 공간 비용 제거와 자원 효율 극대화를 제시했다. 데이터를 흐르게 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의료 시스템의 선순환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제도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술과 제도 간 시차'를 걸림돌로 꼽았다. 기술 통합, 제도 혁신, 현장 안착이라는 3대 장벽을 동시에 타파해야 환자와 의료진이 AI의 효과를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또 양 교수는 AI 기술의 완성도만큼이나 현장 인력의 수용성과 조직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 현장은 생명을 다루는 특성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기술적 신뢰뿐 아니라 인간과의 협업 구조를 만드는 '트러스트 갭' 해소가 필수적이라는 시각이다. 미궁 같은 의료 현장에서 AI가 길잡이 역할을 하려면 결국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

직군별 역할에 따른 AI 재정의도 제안했다. 의사는 진단 정확도 향상과 사망 예측 등에, 간호사는 모니터링 최적화와 기록 자동 분류에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의료기사는 데이터 가공 및 판독 보조에, 행정직은 비정형 문서 처리와 자동화 프로세스에 집중해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한 강력한 컨트롤 타워 구축과 민관 협력을 통한 인센티브 제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처별로 흩어진 데이터 관련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총리실 직속 혁신위원회 등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또 병원이 데이터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수가 반영이나 연구비 지원 등 유인책을 마련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개인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균형 잡힌 관점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디지털 헬스케어법'의 조속한 통과도 촉구했다. 본인 동의 시 건강 기록 전송을 허용하는 '제3자 전송요구권'과 가명 정보 활용 특례 등이 담긴 이 법안이 통과돼야 데이터 중심의 의료 혁신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양 교수는 "혁신은 결국 사람이 완성하는 것이다, 병원 구성원들이 AI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정부가 주도하는 규제 샌드박스와 법적 근거 마련을 통해 데이터를 원활하게 흐르게 해야 한다"며 "올해 안에 관련 법안이 통과돼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촉진을 위한 제도적 기틀이 완성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복지인재원 사업 고도화·확산 주력 "교육 넘어 현장 실증으로"
이어진 발표에서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신득철 팀장은 의료 AI 교육 사업의 방향성을 설명했다. 지난해 확인한 교육 수요와 성과를 올해 전국적으로 확산, 실질적인 현장 적용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신 팀장은 의료 AI가 병원 전반으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보건의료인이 이를 이해하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기술 발전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체계적인 직무 교육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사업은 교육 수요 150% 달성 및 높은 만족도를 기록하며 성과를 거뒀다. 이에 올해는 교육 범위를 6개 주요 병원 중심에서 지역 의료기관을 포함한 거점 체계로 확장해 교육과 실증, 지역 확산이라는 세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교육 과정은 인문, 기초, 심화, 실습,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표준안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특히 프로젝트 과정은 현장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직군별 맞춤형 교육을 통해 단계가 올라갈수록 전문성을 세분화해 실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올해 교육 대상 인원은 당초 계획했던 1200명을 크게 상회하는 1800명 수준으로 추진된다. 삼성서울병원 300명, 서울대학교병원 200명, 연세의료원 220명, 중앙대학교광명병원 235명, 순천향대학교부속천안병원 580명, 분당차병원 250명 등이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교육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조직 컨설팅 및 맞춤형 솔루션도 병행된다. 연세의료원, 순천향대학교병원, 분당차병원, 건양대학교병원 등 4개 기관이 컨설팅 수행 기관으로 선정돼 거버넌스 전략, AI 솔루션, 조직 문화, 보안 및 규제 등에 대한 지원을 받는다.
신 팀장은 "올해는 개별 병원의 교육 운영을 넘어 각 병원이 교육의 거점 기관이 돼 지역으로 확산하는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며 "수도권과 지역의 편차를 해소하기 위해 참여 병원의 지역 배분을 강화하고 현장을 찾아가는 교육을 중요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 AI의 변화는 결국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슬로건 아래 리터러시, 역량, 리더십 교육을 통합적으로 추진하겠다"며 "단순한 수치적 성과를 넘어 의료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발현될 수 있도록 거점 기관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주길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참여 병원들, 특성 살린 AI 인재 양성 및 지역 확산 전략 구체화
사업 참여 기관별 추진 방안도 함께 조명됐다. 분당차병원은 병원 현장 중심의 실무 인재 양성과 5단계 통합형 교육 체계 구축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분당차병원 이성환 실장은 이번 사업이 단일성 교육에 그치지 않도록 병원 내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AI 전략 운영팀 등 전문 조직을 통해 내재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차병원 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구미, 대구 등 지역 거점 병원을 연계해 교육 성과를 전국으로 확산할 방침이다. 이 부원장은 병원 내부적으로 추진 중인 AI 네이티브 EHR 개발 사업과 이번 교육을 연계해 시너지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대한민국 보건의료 AI를 선도하고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는 데 주력한다. 서울대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김영곤 교수는 250명 이상의 의료인을 대상으로 기술 장벽을 낮추는 교육을 시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은 자체 에이전틱 AI SNUH.AI와 디지털 헬스데이터 플랫폼 KHDP 등을 활용한 실무 교육을 진행한다. 또 강원대, 계명대, 제주대병원 등 권역별 거점 병원과 협력해 지역 교육 인프라를 강화한다. 교육의 마지막 단계로는 가명화된 데이터를 활용한 데이터톤(Datathon)을 개최, 실질적인 분석 역량을 함양할 예정이다.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은 충남 권역의 공공의료기관을 아우르는 메디컬 AI 교육 허브를 지향한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백무준 본부장은 글로컬 대학 사업의 일환인 AI 의료 융합 과제와 연계해 교육 시설과 인프라를 공유하겠다고 발표했다.
천안, 홍성, 서산의료원 등 지역 공공의료기관 인력을 교육 대상에 포함해 지역 상생을 도모한다. 이와 함께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각 직군에 특화된 프로젝트를 통해 실질적인 AI 프로토타입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연세의료원은 2026년을 AX(AI 전환)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현장 실무자가 직접 AI 도구를 활용하는 시티즌 디벨로퍼 양성에 집중한다. 연세의료원 디지털헬스실 김영아 팀장은 톱다운 방식의 거버넌스 지원 아래 전 직군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원내 망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AI 인프라를 구축해 교육 산출물이 실제 병원 업무 프로세스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한다. 간호 업무 자동화나 의료 데이터 표준화 등 실무 밀착형 PoC(개념 실증) 과제를 수행해 실질적인 경영 성과를 도출할 계획이다.
중앙대학교 광명병원은 현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문제해결형 AI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중앙대 광명병원 조준환 부처장은 지난해 사업을 통해 확보한 멘토 인력을 활용해 선순환 교육 구조를 확립하겠다고 설명했다.
중앙대병원 및 KMI 한국의학연구소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상급 종합병원부터 1차 검진 기관까지 아우르는 교육 모델도 제시한다. 병원 내부의 구체적인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발굴해 실제 사용 가능한 AI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에 주력하며 장기적인 로드맵에 따른 교육 지속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삼성서울병원은 교육 효율성 제고와 프로젝트 중심의 성과 창출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삼성서울병원 정명진 소장은 모든 교육을 일과 후에 배치하고 전담 직원을 통해 수료율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로우 코드(Low-code) AI 도구 중심의 커리큘럼을 통해 비개발자 직군도 쉽게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며, 5월부터 조기에 프로젝트 공모를 시작해 충분한 실습 기간을 확보한다. 을지대, 제주대병원 등 지역 병원과의 협력을 통해 48시간 압축 코스를 제공하는 등 지역 확산 활동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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