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우리나라 의료기기 및 인공지능(AI) 기업의 성공적인 글로벌 진출을 위해, 호주 시장의 규제 환경과 임상 인프라를 전략적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초기 임상시험 속도가 빠르고 미국 등 주요 시장의 국제 규제체계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단순 수출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 진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16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관으로 서울 엘타워에서 열린 '메드텍 인사이트 2026(Medtech Insight 2026)' 한-호주 의료기기 협력 세미나에서, 호주 의료기기 시장 진출 전략과 미국 등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한 실무적인 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주 단위 조달 시스템 이해 필수 "임상 현장 지지 확보해야"
호주 의료 엑셀러레이터 '오스셀러레이트'의 제로드 벨처 파트너십 디렉터는, 호주가 2700만 명의 인구를 바탕으로 매년 약 85억 호주 달러 규모의 의료기술 지출을 기록하는 중요한 시장이라고 짚었다. 의료기기의 85% 이상, 체외진단기기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한국 기업에 기회가 크게 열려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호주가 단일 구매자가 아닌 다중 이해관계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복잡한 조달 구조를 띠는 시장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호주 공공병원 조달은 '주' 단위의 영향이 크다. 빅토리아주의 경우 해당 제품군이 HSV(HealthShare Victoria) 집단 계약 대상이면 이를 통해 구매해야 한다. 계약 대상이 아니라면 병원이 직접 조달할 수도 있다. 기존 입찰에 포함되지 않은 제품은 병원 자체 평가 위원회 등을 통한 평가 후 개별 조달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이 통로를 뚫기 위해선, 단순히 제품 우수성을 넘어 임상 현장의 간호사, 외과의, 생체공학 엔지니어, 감염 관리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지지를 얻는 과정이 필수라는 제언이다.
벨처 디렉터는 "임상적으로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재정적으로 누가 절감 효과를 보는지, 어떤 예산으로 지불되는지 등 조달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며 "단일 구매자는 없으며, 제품 채택의 성공은 단순히 임상의의 관심을 끄는 것을 넘어 광범위한 임상 챔피언과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구축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진출 관문 호주 TGA "해외 규제 기관과 조화 이점"
이어진 발제에서 호주 인허가 컨설팅사 '일레븐 보더스' 폴 클라크 디렉터는 호주 의료기기 규제기관인 TGA(Therapeutic Goods Administration)의 시스템이 글로벌 시장 진출의 전략적 관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는 IMDRF(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 회원국이자 MDSAP(의료기기 단일 심사 프로그램) 참여국으로, 유럽(CE), 미국(FDA), 캐나다 등 주요 규제 체계와 국제 조화를 추진하고 있다. MDSAP 감사 결과를 여러 참여국에서 활용할 수 있고, 호주에서 확보한 임상 데이터 역시 글로벌 규제 요건을 고려해 설계할 경우 다른 시장 진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와 TGA 모두 IMDRF 회원국으로서 인공지능(AI) 및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분야 국제 가이드라인 형성에 참여하고 있어 규제 체계 간 접점이 크다는 것.
다만 한국과 호주의 의료기기 등급 체계가 서로 다른 만큼 호주의 Class I·IIa·IIb·III 등 위험등급 체계에 맞춘 재분류와 '사전 제출 회의'를 통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클라크 디렉터는 "호주는 하나의 시장에 회사의 명운을 걸지 않고도 규제 및 상업화 전략을 테스트할 수 있는 적절한 규모의 시장"이라며 "TGA의 깨끗한 승인 기록과 호주 내 시판 후 데이터는 향후 미국, 유럽 등 다른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때 강력한 뒷받침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진출 앞당기는 호주 "임상 제도 및 연구 세제 혜택"
호주 임상시험 수탁기관 '모비우스 메디칼' 스테판 치니에프스키 공동설립자는, 호주가 미국 FDA 진출을 위한 선제적 임상시험 환경으로서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 임상시험 통보(CTN) 제도는 TGA가 임상 데이터를 사전 평가하는 방식이 아닌, 임상시험심사위원회와 임상 기관의 검토·승인을 기반으로 임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 그가 제시한 FIH 임상 예시를 보면, 호주 CTN 경로에서 첫 환자 등록까지 걸리는 기간은 12~16주로 제시됐다. 반면 미국 IDE(연구용 의료기기 면제) 경로는 24~36주로 비교됐다.
이는 호주에서 초기 인체 적용 데이터를 먼저 확보해 미국 진출 전 임상·기술적 불확실성을 낮추는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연매출 2000만 호주 달러 미만의 적격 기업은 연구개발 지출에 대해 최대 43.5%의 환급 가능한 R&D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경제성 측면의 이점도 있다고 짚었다.
일례로 미국에서 100만 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가정한 임상을 호주에서 진행하고, 관련 지출이 모두 세제혜택 대상이 될 경우 순비용을 39만6000달러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것.
다만 그는 이 같은 호주 임상 데이터가 미국 FDA 심사에 활용되기 위해선, 임상 설계부터 대상 환자군 및 평가지표를 미국 규제 요건·임상 환경에 맞춰 설계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호주에서 확보한 자료가 신뢰성과 과학적 타당성을 갖추는 동시에, 미국 환자군과 의료현장에도 적용 가능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치니에프스키 공동설립자는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해 호주에서 임상을 진행하는 것이 목표가 돼선 안 되며, 미국 FDA 기준에 맞춘 임상 디자인과 평가지표를 사전에 설정해야 한다"며 "호주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인체 적용 데이터를 조기에 확보함으로써 더 큰 규모의 미국 임상 프로그램에 앞서 임상적, 규제적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루닛, 현지 사업 사례 공유 "현장 워크플로우 통합 관건"
마지막 발제에 나선 루닛 박선영 이사는 자사의 유방암 진단 보조 AI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MMG'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NSW) 공공 유방암 검진 프로그램인 'BreastScreen NSW'에 단계적으로 도입·확대된 사례를 발표했다.
매년 35만 건 이상의 유방 촬영술을 수행하는 해당 프로그램은 판독 인력의 제약 속에서 검진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루닛은 단순한 AI 성능 지표 제시를 넘어, 공공 의료 환경의 보안 요건과 IT 인프라에 자사 솔루션을 통합하는 작업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약 65만 건의 과거 데이터를 활용한 후향적 검증, 2년간의 전향적 검증, 통제된 50~59세 대상 초기 임상 도입이라는 3단계 검증 모델을 거쳤다는 것.
그 결과 1만9000건 이상의 영상을 판독해 130건 이상의 암을 발견했으며, 암 발견률을 유지하면서 2025년 말까지 재검 건수를 약 2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후 단계적으로 검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실제 운영 체계에 AI를 접목했다.
루닛은 호주 공공 검진에서 운영 경험을 축적한 이후 스웨덴, 아이슬란드, 스페인 등 유럽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미국 '볼파라' 인수를 통해 북미 지역의 고객망과 데이터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는 부연이다.
박 이사는 "의료 AI의 공공 부문 진출은 단순히 기술적 검증을 통과하는 것을 넘어, 현지 의료 시스템의 IT 인프라, 데이터 거버넌스, 현장 워크플로우에 솔루션을 안정적으로 통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호주 시장에서 축적한 대규모 운영 경험과 고객 신뢰 획득 과정이 현재 루닛의 글로벌 확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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