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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한 교수진에 힘든줄 몰라요"

구영진
발행날짜: 2004-11-10 07:10:52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의국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의국원들
색색 단풍이 든 가로수와 낙엽이 시선을 잡아끄는 늦가을 아침, 이번 주 의국탐방 대상이 된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의국으로 향했다.

영동세브란스 신경외과의 경우 전통적으로 척추파트가 강세를 보인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배경지식이 부족한지라 의국원들이 대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사뭇 궁금한 상태. 신관 5층 오른쪽 복도를 따라 돌아가니 드디어 영동세브란스 신경외과 의국 표지가 보인다.

현재 시각 오전 11시 15분. 노크를 하고 의국 안에 들어서자 레지던트 3명이 모여앉아 아침 회진을 정리 중이다. 약 50~60명 정도의 환자 각각의 처치와 호전 상태, 체크내용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수술 스케줄과 병실 상황 등을 체크하고 있다.

한손엔 삐삐, 한손엔 전화, 24시간 Call과 함께
“현재 레지던트 4년차들은 모두 9월 중순에 모두 공부하러 나간 상태구요. 3년차부터 1년차까지 의국식구들이 한창 수련 중입니다.” 치프인 강정한 전공의의 설명이다.

영동세브란스 신경외과 의국원은 모두 6명. 척추파트 4명, 뇌파트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척추파트의 멤버는 전공의 3년차이자 치프를 맡고 있는 강정한, 병동을 관리하는 2년차 김태엽, 수술방을 책임지고 있는 안풍기, 1년차 막내인 양중원 전공의, 뇌파트는 2년차 박정근, 1년차 김 훈 레지던트로 구성돼 있었다. (끝내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다. ㅜ.ㅜ)

영동 세브란스 신경외과의 특징은 의국원들이 영동과 신촌 병원을 Full Rotation하게 된다는 점. 신촌의 4가지 파트(혈관, 소아, 기능, 척추), 영동의 2개 파트(척추, 뇌)를 각각 2~3개월에 걸쳐 모두 경험하면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서의 실전 적응능력을 쌓게 된다.

기자가 이것저것 질문하는 사이 각각의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가 쉼 없이 울어댄다. 회진정리 와중에도 각자 전화로 상황을 체크하고 답변하고 질문하느라 분주하다. 하루 종일 호출과 Call을 받는 의국 레지던트들에게 삐삐와 전화는 마치 공기처럼 필수품이었다.

레지던트 1,2년차 하루 온종일 일과 함께
“원래 모든 의국이 그렇듯 레지던트 1년차가 가장 힘든 시간이죠.” 1,2,3년차 모두 입을 모은다.

1년차 하루의 시작은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정도. 우선 오전 7시 30분에 진행되는 컨퍼런스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한다. MRI 사진 체크는 기본이자 필수, 1시간 30분정도 소요되는 컨퍼런스 후에는 회진을 돌고, 회진 후에는 회진명단을 작성한다. 그 사이 수술 준비, 신환 입원을 점검한다.

영동 세프란스 척추파트의 경우 ‘적으면 2~3명, 많으면 하루 10명의 신환이 있어 대략 일주일에 30명 정도의 신환이 있다’고 들려준다. 게다가 영동 세브란스 신경외과에서 지난 4월 1일 야간진료를 시작한 이후 병원 환자가 더욱 늘었다고.

11시경부터 회진정리에 들어가고 정리 후엔 CT·MRI, 환자드레싱, 방사선과·마취과 Push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1년차와 2·3년차의 하루가 교차돼 흘러가죠. 2·3년차는 주로 수술방으로 이동하고 1년차는 병실과 수술방을 분주히 오가며 수술 전후 상황을 체크합니다.”

이러다 보면 벌써 2시경, 이젠 오후 회진 준비를 해야한다. 그 사이 콜은 계속오고 그날 신환 인터뷰도 마쳐야한다. 그날의 수술 일정이 대략 끝나면 오후 7시 경. 다시 오후 회진이 이어지고 이틈에 스터디, 환자 체크를 해야한단다.

“정말 바빠요. 환자 진료하랴, 오더 정리하랴, 전화 받고, 간호사 요청 따르고, 환자 만나 설명하고,.. 해야할 일이 쌓여있다는 중압감에 치여서 초기엔 밥먹을 시간도 없었죠. 하루에 12시간 자던 사람이 4시간도 못 자니까 첨엔 정신이 몽롱했지만 이젠 밥도 잘 챙겨먹어요” 1년차 양중원 전공의의 말이다.

1년차는 트레이닝의 시기, 자신의 역량 재발견도 함께
레지던트 1년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날 오전까지 신환 인터뷰와 컨퍼런스를 준비해야한다. 게다가 응급실 환자 당직 서는 것도 필수다.

“의국 1년차가 둘이니 2틀에 한번씩 응급실 당직이 돌아가죠. 신환 인터뷰가 늦어지면 새벽 1시나 2시경에 환자를 깨워 진료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죠.” 치프의 설명이다.

91학번 늦깍이 1년차 김훈 전공의는 “자유인에서 병원에 종일 매여 사는 1년차가 돼 개인시간이 없지만 벌써 8개월이 지났다.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분야라는 매력에 신경외과를 택한 만큼 힘들어도 보람있다”며 “젊어서 방탕(?)하게 지낸 생활의 보상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고.

새벽에 환자 깨워서 진료하고, 신환보다 그 옆에서 잠들어 아침에 깨고, 엘리베이트 기다리다 졸고, 복도 환자침대에서 잠들기도 하고... 다들 이런 1년차를 거치면서 자신의 역량과 자신감도 함께 키워가는 것이리라.

“우리 의국만큼 빵빵한 교수진에 폭넓은 케이스를 접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죠. 6개 파트로 나눠진 신경외과도 흔하지 않구요.”두 1년차 모두 ‘힘들다’면서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수술실, 디스크 환자 수술 동시 2건 진행 중
1시30분 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디스크 환자 수술 2건이 동시 진행되고 있는 수술실에 따라 들어갔다.

강정한 치프는 “오늘이 마침 마취과학회가 열려 수술이 적은 날”이라며 “수술실 1과 2에서 각각 진병호 스텝과 진동규 교수진이 디스크를 빼내고 채우는 수술과 디스크 제거 수술을 진행 하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의국원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집게를 들고 수술부위에서 피묻은 디스크 조각을 떼어내는 모습’은 기자의 얼굴을 덮은 마스크와 수술풍경 만큼이나 낯설었다. 수술실에서 첨으로 2년차 안풍기 전공의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눈밖에 안보여 다시 만나도 알아볼 수 있을까 싶지만.

“치프의 역할은 과수술·병실 문제 해결 등 일의 진행흐름을 파악해 원활하게 관리·감독하는 것과 환자진료 시 질환과 질문요법, 케이스 경험 등을 통해 성장하면서 후배 레지던트들도 함께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가 수술사진을 찍는 사이 치프인 강정한 전공의는 설명하랴 수술실 사용여부와 마취과 문제 등으로 전화협상을 하랴 분주하다. 드디어 조용은 스텝 환자의 수술이 잡혔다고.

‘식은 땀 흘리고 등 저리던’ 사고(펑크)의 추억
4시경 의국과 비슷한 모습의 병실 옆 당직실에서 2년차와 1년차 뇌파트 전공의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때 1년차 8개월 양중원 전공의가 당직실로 들어오더니 하얀 까운을 입은 채 서서 거울도 없이 수염을 깎고, 허리 두드리고 약식 한입 먹고, 콜라 한 모금을 마신다. 기자 질문에 대답하고 너무도 익숙하게 다시 회진오더를 체크하던 와중에 전화를 받더니 어디론가 달려간다.

여기서 잠깐, 1주일에 한번 의국원들에게 주어지는 Off 시간, 진정한 Off의 의미는 반나절 정도 콜이 없어진다는 것, 즉 찾는 사람이 없어져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레지던트 1,2년차 모두 1주일에 딱 반나절 정도 Off가 되고 나머지 24시간은 항상 병원에서 콜을 받는 대기 상태가 지속된다.

김태엽 전공의가 1년차일 때 에피소드 하나.
Off 나갔다가 친구들과 술먹고 잠들어 다음날 술집에서 눈을 뜨고 보니 이미 해가 중천에 뜬 8시 30분이었단다. 아침 컨퍼런스를 펑크내는 일명 사고를 친 것이다. “뭐, 학부 시험기간에 공부 못하고 잠들었다 시험시간이 된 느낌이었죠. 식은땀이 쫘악~ 흐르고 등이 저려오던걸요.” 그 덕분에 그후 한달 반 동안 Off를 못 나가고 의국에서 살았다고.

다들 분주히 콜을 받고 나간사이 홀로 남아 의국 내부를 한번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하얀 가운과 파란 수술복이 이층침대와 소파 곳곳에 수건처럼 놓여있다. 책상 위엔 전화기와 함께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볼펜, 추억을 되살리는 삐삐, 게다가 방 한켠엔 음식 빈그릇까지.

냉장고 문 앞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중화요리, 도시락 등 식당메뉴도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에 열어본 냉장고 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호, 박스째 던져져 있는 귤 상자에 먹다만 포도주스, 당근주스, 청주, 콜라까지... 최고 히트는 냉동실 안에 있던 얼어붙은 컵이었다! 과연 누가 넣어두고 잊어버린 걸까?

실력 있되 솔직하고 자주적인 의사를 꿈꾼다
힘들다는 수련의 1년차의 터널을 겪어내면서 한계를 극복하는 데서 얻는 자부심이랄까 각기 만난 의국원들 모두 ‘2년차부터 수술의 새로운 재미를 알아간다’고 전한다. 레지던트 4년의 시간을 마친 후 그들은 또 어떤 모습의 의사로 변모될까?

“감정적으로 끌리는 의사는 솔직하고 자심감과 구별되는 한계를 아는 그런 사람이죠. 기계고치는 수리공이 아닌 의사로서 솔직하되 자주적인 의사가 되고 싶죠.”

“친절하고 실력 좋은 의사면 좋겠지만 최대한 실력을 갖추고 친절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 수에 비해 의사수가 적어 힘든 신경외과지만 생활은 보람 되요.” 3년차와 2년차 레지던트가 말하는 의사상이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만난 의국원들.
바람이 일듯 하얀 까운을 나풀거리며 분주한 1년차부터, 이것저것 체크하랴, 지시하며 분주히 의국 내 흐름을 조절하는 치프까지. 의국원들 각각의 대화와 표정 속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따스함, 자부심을 만날 수 있었다.

낙엽이 물든 언덕너머 영동세브란스 신경외과 의국에는 피곤하지만 행복한 레지던트 6명이 모여 산다.

<뽀너스> 5섯 글자로 의국 표현하기
“자율적인 곳”-3년차 강
“최강의 의국”-1년차 양
“원하는 곳!”-2년차 김

기타의견: “지저분한 곳”, “의국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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