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약 등재방식을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선별등재 시스템)으로 바꾸면 의사들은 걱정이 늘어난다.”
정부가 보험약 등재방식을 네거티브 리스트에서 포지티브 리스트로 전환할 예정이지만 카피약의 질 관리 강화, 연구자 임상시험 활성화 등 관련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채 선시행, 후보완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한내과학회(이사장 연세의대 문영명)와 대한임상약리학회(회장 서울의대 신상구)는 17일 ‘약제비 선별목록제도의 합리적 시행을 위한 토론회’를 열어 보험약 등재방식의 변경으로 인한 의사의 처방권과 환자의 진료권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이날 가톨릭의대 노태호(내과학교실) 교수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접하는 한 내과의사의 입장’이라는 발표를 통해 향후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평범한 의사 입장에서 정부가 왜 포지티브 리스트를 시행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니 그 많은 의약품이 꼭 필요한지, 과도한 약물 사용으로 인해 국민 건강이 위협받고 있지 않은지, 약값이 많이 들어 의료비 증가를 초래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보는 기회가 되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현행 급여등재방식(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은 제약사가 의약품 허가후 30일 이내에 보험약 등재 신청을 하면, 심평원 약제전문평가위원회가 급여 여부와 상한금액을 평가한 후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와 달리 포지티브제는 의약품의 임상적 유용성 외에 경제성평가를 거쳐 비용효과적인 제품에 한해 보험약으로 등재하고, 공단이 해당 제약사와 보험등재가격을 협상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와 관련, 노태호 교수는 포지티브제로 우수한 의약품을 선별등재 한다고 할 때 ‘우수하다’는 의미를 의사와 정부, 보험자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몇 가지 우려를 제기했다.
다시 말해 의사는 우수한 의약품을 가격과 상관없이 효능이 좋은 것이라고 규정하지만 건강보험은 가격과 효능이 공히 적절해야 하는 것으로, 또다른 입장에서는 효능과 상관없이 가격이 저렴한가를 잣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의사들은 오리지널 약이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건강보험에서는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통과하면 오리지널과 동등하게 우수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최근 생동성시험 조작사건을 예로 들어 카피약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화두를 던졌다.
또 노 교수는 “같은 고혈압 약이라고 하더라도 효능효과와 약효 지속시간 등이 달라 의사가 환자 상태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선별등재로 인해 보험약이 대폭 줄지 않을까 걱정했다.
특히 노 교수는 “의약품 선별등재에 대해 내과의사가 갖는 기우는 보험약이 얼마나 줄게 될까, 의사가 생각하는 우수한 의약품보다 건강보험 입장에서 본 우수한 의약품이 선별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고 털어놨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 교수는 “만일 오리지널 고혈압 약이 보험약으로 등재되지 못하더라도 나와 내 가족에게는 오리지널을 처방하겠지만 환자에게는 카피약을 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노 교수는 선별등재방식으로 인해 신약의 보험약 등재가 지연되고,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 참여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선별등재방식으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약이 줄지 않을까, 오리지널 약이 배제되지 않을까, 보험등재 여부가 비의학적 동인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보험에서 절감된 약품비를 결국 개인이 부담하는 게 아닐까 등을 생각하면 내과의사들은 걱정이 늘어난다”고 말을 맺었다.
서울의대 방영주(내과학교실) 교수는 카피약의 질 보장 문제를 거론했다.
방 교수는 “선별등재방식이 도입되면 카피약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질적 보장을 위해 사후 질관리 체계를 정립해야 하지만 정부는 전혀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따졌다.
이어 방 교수는 “선별등재방식으로 보험재정이 절감되면 그 재원을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에 투자해 카피약의 사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복지부 박인석 보험급여기획팀장은 “포지티브제로 신약진입이 어렵게 되거나 전문가 의견이 무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박 팀장은 건강보험 재정 파이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정의 30%를 차지하는 약제비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제도를 시행하려는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박 팀장은 “보험등재 여부를 결정할 때 전문가들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며, 새로운 신약부터 적용하면서 향후 5년간 기존 보험약을 경제성평가해 등재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완벽한 상태에서 출발할 수 없지만 계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한국다국적의약품산업협회 지동현 이사는 “포지티브제를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에서 환자 본인부담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실현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시행후 보완하겠다고 하면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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