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기밀매를 방지하기 위해 장기이식 의료기관에 ‘순수성평가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장기매매의 책임을 의료기관에 전가한 채 불필요한 규제만 양산하려 한다는 불만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복지부는 장기매매를 방지하기 위해 장기이식법 시행규칙을 개정, 하반기 중 장기이식 의료기관에 ‘순수성평가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순수성평가위원회는 병원 사회복지사가 장기 기증자의 순수성 여부를 1차 심사한 후 매매가 의심되는 장기기증 희망자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재심의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성평가위원회가 과연 장기매매를 근절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 모대학병원은 과거 장기매매단의 지능적 수법에 속아 장기이식을 하다 사법당국에 적발돼 수사를 받았다.
장기매매 브로커는 장기적출 수술 직전 애초에 장기이식 적합 판정을 받아 장기를 기증키로 한 사람과 장기밀매자를 장기이식 수술 직전 바꿔치기하는 수법을 이용했고, 병원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이 대학병원은 수사결과 장기매매단과 결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누명을 벗긴 했지만 그 후 장기기증자 본인확인 절차를 엄격히 해 장기적출 직전 지문 뿐만 아니라 각막인식까지 확인하고 있다.
장기매매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이 병원의 사례처럼 환자를 바꿔치기해야 하는데 장기매매단이 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방지한 것이다.
문제는 공문서 위조다. 실제 최근 경남지방경찰청 외사수사대가 적발한 장기매매단도 공·사문서를 위조하는 수법을 이용해 장기매매를 알선해 왔다.
장기매매 브러커는 이 대학병원 장기이식환자에게도 이런 수법을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당 병원은 장기매매단과 연계했다는 오해를 뒤집어썼다.
따라서 장기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에 앞서 공문서 위조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병원계의 지적이다.
이 대학병원 관계자는 15일 “장기기증자 바꿔치기수법은 완벽할 정도로 방지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장기밀매자가 공문서를 위조해 오면 수사권이 없는 병원 사회복지사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병원에 순수성평가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두겠다는 것은 정부가 장기매매의 책임을 의료기관에 전가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특히 병원계는 이런 불필요한 규제로 인해 과거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가 설립된 이후 장기기증이 크게 감소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복지부도 장기매매 검증이 미비한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일정한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을 열어두고 검토중인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기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장기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라면서도 “의료기관 순수성평가위원회가 정기매매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할 경우 책임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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