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환자들은 최선의 치료를 원하고, 환자가 사망하면 보호자들은 진료비를 돌려달라고 한다. 또 복지부는 우리가 부당진료를 했다고 14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참담하다. 이제 모든 의욕을 상실했고, 보험기준대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
성모병원 혈액내과 조석구 교수의 말이다.
최근 복지부가 성모병원이 28억원을 부당청구 했으며, 약 14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고 발표하자 성모병원 의료진들이 심각한 상실감에 빠져들고 있다.
조석구 교수는 1일 “복지부의 과징금 처분은 성모병원 의료진의 의욕을 빼앗아갔고, 교수의 존재가치가 사라졌다”면서 “우리는 백혈병에 걸린 중환자들을 더 열심히 치료해 살리려고 한 것일 뿐인데 참담하다”고 털어놨다
또 조 교수는 “보험급여기준은 백혈병치료의 기본 골격인데 임상적 상황과 의료전문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엉성한 제도를 만들어놓고 전문교수가 진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료비를 삭감하고, 급여기준을 위배했다고 판정을 내린다”고 비난했다.
요양급여기준이 의료현장의 발전 속도를 쫒아오지 못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임의비급여라는 게 발생하는 것인데 이를 부당진료로 매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환자가 심평원에 민원을 내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진료비확인신청을 하면 임의비급여가 되고, 복지부가 실사를 나오면 부당진료로 걸린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복지부 실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방어진료 경향도 감지되고 있다.
조 교수는 “앞으로는 100% 보험기준대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 보험기준을 초과하더라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진료하면 임의비급여가 불가피한데 그러면 삭감당하고 나중에는 불법진료를 했다고 과징금을 때릴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요양급여기준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 달라고 병원과 학회에서 그렇게 요청해도 귀담아 듣지 않더니 막상 임의비급여 문제가 터지니까 왜 제도개선 요청을 하지 않았느냐고 딴소리를 한다”고 복지부와 심평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러면서 그는 심평원이 추구하는 이상적 진료 모델이 뭐냐고 따졌다.
조 교수는 “환자를 치료하기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급여 진료를 했는데 14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리는 게 현실”이라면서 “의사들이 생명을 존중하는데 한계가 있고, 윤리적 진료를 하면 할수록 진료여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부터 복지부와 심평원이 원하는대로 보험되는 것만 진료하면 된다. 요양급여기준과 유권해석에 맞게 진료하라는 게 정부가 바라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명백하게 보험적용이 되는 약제나 치료재료만 사용하고, 삭감 소지가 있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것은 의료기관과 환자가 계약을 맺어 비급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건강보험의 근간을 흔든다고 한다”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과징금과 환수액을 합해 170억 처분을 내린 것은 의사들의 숨통을 끊는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전문 교수들의 목을 조이면 의료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데 점점 지쳐가고, 진료 의욕도 상실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환자들이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신청 민원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허탈감을 피력했다.
그는 “백혈병환자 둘 중 한명은 사망하는데 죽은 환자의 보호자들이 진료비를 돌려달라고 민원을 내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면서 “정부도 국민을 설득해 이런 모순을 개선하지 않은 채 병원만 사기꾼으로 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런 상황을 늪에 빠진 것에 비유했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려고 하면 할수록 부당진료라는 덫에 더 깊숙이 빠져든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조석구 교수는 “국민들도 이런 문제를 심평원에 항의해야지 어떻게 병원이 잘못했다고 시위를 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결국 170억원 처분 사건으로 심평원이 원하는 방식대로 갈 것”이라면서 “환자를 살리려는 선배 의사들의 노력과 환자들의 희생 덕분에 의학수준이 이만큼 발전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퇴보가 불가피하다”고 못 박았다.
의사와 환자간 불신 역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의료현장의 불신이 더욱 팽배해지고 있고, 더 이상 환자나 보호자를 믿지 않는다”면서 “그저 마음속으로 환자와 대화하고 진료할 뿐이다. 그렇다고 보험대로 진료하면 그땐 다시 의사를 원망할 게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심평원이 이중 심사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도 감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항생제를 4주간 쓰면 2주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삭감하는데 정작 환자가 민원을 넣으면 모두 인정하는 게 심평원의 행태인데 이게 이중심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조 교수는 “법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하겠지만 희망조차 갖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환자에 대한 애정의 끊을 놓지 않았다.
조석구 교수는 “그래도 고통받는 환자를 보면 불법진료로 매도 당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보험이 되느냐 이전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쓸 건 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조 교수는 “문제는 급여를 확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의사들의 전문지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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