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주위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동국대학교 의대생 300여명은 지난 22일부터 동국대경주병원 의료원장실을 점거한 채, 재단측이 추진하려는 양한방병원 통합 철회와 교육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수업과 시험 역시 거부하고 있다.
또한 동국대경주병원에서 근무하는 90여명의 인턴과 전공의들도 병원을 나와 진료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주 한방병원을 동국대 경주병원내로 통합한다는 학교재단측의 선언에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의 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발생한지 열흘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교육환경 조성해 달라”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들의 요구사항은 세 가지로 △한방병원의 경주병원으로의 합병 반대 △수련병원으로서의 포항병원 자격 유지 △교수진 처우개선과 충원, 수련의 T.O 확보 등이다.
동국대 경주병원과 포항병원은 열악한 시설과 처우 등으로 교수진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최근 3년간 경주병원과 포항병원은 이직율이 각각 41%, 71%에 이르고 있다.
비생대책위 정찬경 대외홍보국장은 “교수진이 빠져나가도 경영상의 이유 등으로 제대로 충원되고 있지 못하다”며 “학생들의 수업도 타지역에서 출강하는 교수진에 의해 상당부문 메워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교수진 부족은 레지던트 T.O 확보가 어렵게 돼 레지던트뿐 아니라 인턴 지원 역시 대폭 감소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공의로 들어가더라도 교육보다는 환자 돌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지난해 의대졸업생 60여명중 단 12명만이 인턴으로 동국대병원(경주·포함)에 지원했다.
특히 포항병원은 노후된 건물과 낙후된 의료시설로 인하여 환자들이 최근 몇 년동안 급격히 감소했고 최근에 그 추세가 훨씬 심각해져 더 이상 학생들이 실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어 버렸다고 비상대책위는 밝혔다.
비생대책위는 “학교측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은채 내년부턴 학생들의 실습을 포항병원에서 못할수도 있다는 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측이 경영상의 이유로 경주병원의 시설을 축소시켜 한방병원과 통합할 방침을 밝히자 위기감에 몰린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강경대응에 나선 것이다.
정찬경 대외홍보국장은 “작금의 현실은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은 커녕 암울한 미래밖에 보이질 않는다”며 “학생으로서 보장되어야 할 교육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하에 수업거부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쓰러지는 교육병원 갈 곳 없는 학생교육"
경영악화에는 '동감' - 해결책에는 '이견'
실제로 동국대학교 경주병원과 포항병원은 3년째 수술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경주병원의 경우 2001년에 3,505건이던 수술건수가 매년 줄어들더니 2005년에는 2,593건으로 줄었다. 포항병원 역시 매년 10%대의 수술감소로 2001년 1,266건이던 것이 2003년에는 997건으로 감소했다.
이같은 사정 등으로 동국대의료원은 매년 적자가 누적되고 있어 경영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재단 이사회는 경영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양한방 병원의 통합을 결정했다. 당초 포항병원의 경우, 폐업도 고려했으나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측 한 관계자는 “작은 도시 경주에 2개병원이 운영되는 것은 비 효율적”며 “학생들이 우려하는 병원통합으로 인한 우려는 일산에 건립중인 병원이 개원해 운영이 안정화되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재단측이 근시안적인 미봉책 제시에 급급하다며 시설투자 등을 통한 병원정상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학생들은 병원 경영이 병원과 관련없는 이사진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경영악화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병원에 대한 경영독립도 요구하고 있다.
병원측, "우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병원도 이번 사태를 해결할 열쇠를 찾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 병원 통합 철회와 같은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병원측에서는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국대 경주병원의 한 관계자는 "병원 자체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실질적 결정권자인 재단측과 학생들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병원 역시 전공의 대표 등과 대화를 통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전공의들과 학생들의 요구가 병원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고 있어 진전이 어렵다"고 전했다.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병원 응급실의 경우 교수들이 당직일수를 늘이면서 대체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측은 개별적으로 전공의들의 복귀를 종용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병원의 다른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병원합병을 7월1일로 발표했지만 이전에 따른 리모델링 공사나 준비는 전혀 안돼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가 합의점을 찾고 마무리되어야 이전 공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의료원장실 점거운동을 벌이는 의대생들
재단측 대응 없어 ··· 사태 장기화 예고
현재 의대생들은 2주째 수업과 시험을 거부하고 있다. 한 주는 수업이었고 다른 한주는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시험거부까지 들어간 것이다.
이들은 또 10명에서 12명씩 한 조를 꾸려 번갈아가며 의료원장실을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생들과 재단측과의 상시적인 대화통로가 전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의대생들은 의료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현 사태에 관한 입장을 나누고 의견을 교환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이는 실질적 권한은 이사회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대책위 양진영 위원장은 “재단측은 우리에게 특별한 입장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 교수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진료거부를 선언한 전공의들은 30일 새벽 회의에서 응급실에는 복귀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진료거부를 지속하자는 강경한 목소리가 힘을 얻은 상황이다.
이로써 학생들은 당분간 강경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맞서 재단과 병원측 역시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 이번 사태는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시험도 치르지 못한 채 투쟁에 나선 학생들과 전공의들. 그들만의 문제에서 벗어나 우리들의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 사태 해결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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