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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門은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다

박경철
발행날짜: 2004-08-02 07:30:30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고정칼럼 집필자 소개>
인터넷에서 필명'시골의사'로 통하는 박경철 외과전문의는 국내 최고의 사이버애널리스트로 MBN 주식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날카로운 분석력을 인정받고 있다.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문은 경계를 조건으로만 존재한다.

경계는 틈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틈입을 허락한다면 그것은 경계가 아니다, 이것과 저것의 정체성을 가르는 것이 경계이며.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을 가르는 것도 경계다, 심지어 생사를 가르는것도 현상이 아니라 경계이다.

문은 경계 위에서만 존재한다.

문은 열려있을 때 소통이지만, 닫혀 있으면 단절이다. 길에는 원래 문이 없다. 길이 크던 작던 문이 없음으로서 길이다, 만약 문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경계이며, 이미 그것으로서 길의 이쪽과 저쪽은 다른 세상이 된다.

경계가 지어진 길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한다,

문은 경계를 상징하며, 이쪽과 저쪽 어느편에 설 것인지를 강요한다.

문을 넘어서는 순간 나는 이편에서 저편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이제 문지방을 넘어섬으로서 이편은 저편이 되고 저편이 이편이 된다. 좀전까지 이편이었던 저편으로 넘어가려면 문을 다시 문을 거쳐야 한다, 이렇듯 문을 통과하는 통과의례는 이미 저쪽에서 이쪽으로의 복종을 강제한다.

문은 이미 만들어지는 순간 차별적 수용을 선포한다,

내 집에 만들어진 문은, 타인의 틈입을.., 선방의 사립문은 속인의 발자욱을,,, 청와대의 담장은 힘없고 비루한자의 접근을,,, 나무좋은 계곡에 들어선 모텔은 서로 희롱하지 않는자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듯 문은 차별적이다..

대혜선사가 마조선사에게 묻는다...

"도가 무엇입니까?"... 마조 선사가 말한다 ... " 지금은 사람이 많으니 있다가 다시 오시게.." 이에 대혜선사가 도로 방을 나가면서 문지방에 발을 걸치자,,,, "할........!", 이에 대혜는 수십년 미망의 허물을 벗고 오도悟道의 어깨춤을 춘다,

대혜가 걸친 문지방은 "경계"이다,

안과 밖이 원래 하나인데. 문지방이 갈라 놓았을 뿐이다, 원래 안과 밖은 다른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벽으로 사방을 막고, 천장으로 상하를 막아, 이쪽을 안이라 부르고 저쪽을 밖이라 부른것이다,.

이쪽과 저쪽은 벽을 만든자들이 부르는 이름이지, 그것을 드나드는자에게 명명된 것이 아닌데, 지레 드나드는 자가 무릎걸음을 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안으로 들려하고, 이때 유일한 길은 문이 된다.

들어선자에게 문은 통로이지만, 들어서지 못한자에게 문은 단절이다.

문지방에 발을 걸친 대혜는 그 순간 안과 밖을 나누는 것은 마음이지, 벽이 아님을 깨닿는다,., 원래 안과 밖이 둘이 아님에 ,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 죽은자와 산자가 경계가 없으니, 깨침과 미망에는 더더욱 문이 없음을 알고, 대혜는 수십년간 자신을 가두었던 생사의 일대사 인연을 홀연히 박차고 나온다.,

어디 경계없는 본성이 부처를 깨닿는 일에만 머무르랴..,

너와 나는 색깔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다, 너와 나는 출신이 같으면 직업이 다르고, 직업이 같으면 학벌이 다르다, 학벌마져 같으면 고향이 다르고, 고향이 같으면 성씨가 다르다.. 이렇듯 너와 나의 경계는 끊임없이 핵분열과 교배를 거듭한다, 향우회 동문회는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지만 ,., 돌아서면 금새 "그때의 우리"가, 의사와 간호사, 경영자와 노동자가 되어 다시 " 남으로 " 분화한다,

이제 담벼락이 아닌, 나와 너의 경계마져도 서로의 틈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 나에게로 들어오는 길 (혹은 너에게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하나 문이 생기고 담장이 쌓여, 이쪽과 저쪽만 남는다.,, 그리고 그리 머지않아 차차 길도 사라지고 문은 좁아지면. 나중에는 문조차 흔적으로 남는 담장과 경계만 하늘에 닿을 것이다..

大道無門..........

그러나 문제는 문이 아니지 않는가...


시비와 선악이 본래 공空하고
마군과 魔軍과 제불諸佛이 원시동체 元是同體입니다
생사열반은 꿈속의 꿈이요
이해득실은 거품위의 거품입니다
진여眞如의 둥근달이 휘황찬란하여
억천만 겁 변함없이 일체를 밝게 비추니
사바가 곧 정토입니다
물거품인 이해득실을 단연히 버리고
영원한 진여의 둥근달을 바라보며 나아갑시다
만법이 청정하여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가없는 이 법계에 거룩한 부처님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들판의 괭이소리 공장의 기계소리 함께같이 패텽가를 노래하니
푸른 언덕 잔디위에 황금빛 꽃사슴이 즐겁게 뛰놉니다.

1986년 퇴옹 성철의 법어다.

성철의 문에는 이편과 저편이 모두 부처로 가득하다, 성철의 문에는 공장의 기계소리와 들판의 괭이소리가 드나들고, 그 들고남을 가리지 않는다. 성철의 문은 벽이 아니라 틈새이다. 닫아버린 문은 벽이지만, 열려있는 문은 틈이다.

성철은 범계와 마계에 틈을 두어, 들어선자 되돌아 나올 수 있고, 가고자 하는자 막지 않는다. 그러나 성철의 문은 드나들 이유가 없다. 어차피 성철의 문은 이쪽도 사바이고 저쪽도 사바이며. 이쪽에도 꽃사슴이 저쪽에도 황금연못이 있는것인데 굳이 애써 드나들어 무엇하겠는가...

결국 그의 문은 틈이되고 마지막에는 길이된다..
.....................

우리는 언제쯤이면 우리가 잃어버린 길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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