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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회 로비력 대단했지만 끝났다"

안창욱
발행날짜: 2011-11-24 12:15:48

서울의대 권용진 교수 "국민들에게 큰 신뢰 잃었다"

가정상비약 수퍼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이 약사회장 출신의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과 민주당 일부 의원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보건복지부와 시민사회단체, 언론이 모두 나섰지만 약사회 로비로 무력화된 것이다.

약사법 개정이 무산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권용진 교수
<메디칼타임즈>는 가정상비약 수퍼판매를 주도했던 서울의대 권용진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의미를 짚어본다.

이제 수퍼판매는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하나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뜨겁게 논쟁이 되고 준비된 적은 없었다. 국민들이 이제야 수퍼판매가 시행되지 않는 이유를 똑똑히 알았기 때문에 이제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이 있으니 더 잘 되었다고 봐야 한다.

수퍼판매를 반대하던 복지부가 정부 입법으로 추진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복지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열심히 나섰는지는 의문이다. 마지못해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약사회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진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22일 약사회가 발표한 담화문에는 약사법 개정이 무산된 것을 '사필귀정'이라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분강개'해야 할 복지부가 '환영'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미 수퍼판매는 포기하고 처음에 논의했던 소방서나 경찰서 등에서 야간과 공휴일에만 일반약을 팔 수 있도록 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았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갖게 한다.

시민사회단체도 가정상비약 수퍼 판매를 위해 많이 노력했다

경실련, 가정상비약 시민연대, 환자단체연합회, 그 외 소비자단체 등 찬성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각각 시민단체들의 본질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약사회의 자금으로 사업을 하는 시민단체는 안타깝게도 사회정의나 개혁보다는 약사회 편이라는 것, 사회주의적 경향성을 가진 몇몇 단체들은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놓기 때문에 사실상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야간과 공유일에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수퍼판매가 필요없다는 논리는 소비자가 무지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약사회의 로비력은 역시 대단한 것 같다

대단하다. 약국이야 오래 전부터 약사들이 지역사회 활동을 활발히 해 왔다. 더군다나 병의원이 부족하던 시절 약국이 건강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해 왔으니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일단 동네에 약국보다 병의원이 많아졌다. 또한 약사회 정치력의 핵심은 자신들의 주장을 항상 전문성을 강조하는 의사집단과 배치시키면서 상대적 약자라는 면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실제 약사회가 모두 승리했다고 볼 수 있는 1993년 한약분쟁, 2000년 의약분업, 2005년 약대 6년제 추진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두 의사와 한의사라는 상대가 있던 싸움이다. 그 과정만 보면 정치인들 입장에서 약사가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르다. 약사회가 국민과 싸움을 한 것이다. 국민들이 이제야 약사들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약사회의 로비는 어렵지 않겠나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 보는가

수퍼판매를 위한 노력과 함께 약국 특혜를 공론화하고 해결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많은 노력이 가시화될 것이다. 반면 약사법 개정이 무산되면서 약사회는 언론과 국민들에게 너무 큰 신뢰를 잃었다.

그래서 다음 국회에 가면 약사법 개정을 반대하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그 대안으로 복지부와 타협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타협은 어려운 시점에 와 있다. 국민들의 분노 수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다음 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될 거라 생각하나

그렇다. 소비자중심주의(consumerism)는 보건의료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메가트렌드다. 보건의료에서 전문가들의 판단과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의 선택권과 판매권을 독점할만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퍼판매는 이제 시간 문제다. 반대하는 주장은 논쟁이 되면 될수록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반대의 가장 강력한 힘이 약사회의 로비였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약사회와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워 질 거라 생각한다.

약사법 개정은 실패했지만 성과가 있다면

국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보건의료정책이 이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고 몇몇 이념이 강한 시민단체들이 시민사회를 대변하고 있었다면 이 사건은 순수한 국민들의 주장이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구체화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목소리들이 조직화돼 의료소비자단체들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지금 당장은 약사회가 수퍼판매 반대에 성공했을 수도 있고, 복지부가 약사회와 함께 꼼수를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일을 장관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약사회장 출신이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수퍼판매를 허용하자는 약사법 개정이 다시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순간의 기쁨'이 될 것이다. 길게 보면 소비자의 관점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국회가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을 '공급자-엘리트 행정관료 중심'에서 '소비자-환자 중심'으로 전환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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