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가 입법예고한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제 시행이 오는 3월로 성큼 다가왔지만 일선 수련병원들은 뾰족한 대책이 없어 눈치만 보고 있다.
최근 <메디칼타임즈>가 전공의 주80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일부 수련병원의 준비상황을 확인한 결과 빅5병원은 물론이고 중소 수련병원까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전공의 수련시간을 주80시간으로 조정하고, 이를 대체할 인력을 충원해 진료에 투입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전공의보다 값싼 인력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인건비가 높은 펠로우를 충원하자니 최근 경영난으로 재정적인 여력이 안된다.
결국 지금까지 그랬듯 전공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게 병원들의 입장이다.
즉, 답은 정해져있지만 정부도 병원도 답을 내놓지 않는 사이
만만한 전공의 쥐어짜기 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A수련병원 병원장은 "솔직히 대책이 없다. 전공의가 있는데 그보다 연봉이 높은 펠로우를 투입하는 병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병원이 근무강도가 약한 3~4년차 전공의를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B수련병원 한 교수도 "사실 대책이 없지 않나. 그렇다고 정부가 전공의 수련에 예산을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 법적인 처벌은 없으니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공의 희생=환자 안전 빨간불
현재 상태라면 전공의 주8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는 3월 이후에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공의들은 환자의 생명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버티고 있다.
C수련병원 전공의(외과)는 90일째 당직 중이다.
그는 석달 내내 온콜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지만 한번 수술장에 들어가면 밤을 새야하는 경우가 많아 체력적인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시간이 없어서 3일간 밥도 못 먹고 다녔는데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의욕도 사라진다"면서 "환자 안전을 챙기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D수련병원 전공의(내과)는 환자 80명을 맡고 있다. 환자 한명 한명 신경을 쓰고 싶지만 기계적으로 어제 처방한 것을 복사해서 오더를 내린다.
잠시 환자 차트를 꼼꼼히 살펴볼까 하면 어느새 환자 보호자가 찾아와 환자 상태가 안좋다며 쫒아오면 기계적인 처방전 발행도 빠듯하다.
혼자 80명의 환자를 커버해야 하는 전공의가 환자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까.
너무 멀리온 '전공의 수련'
사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학병원들은 출혈경쟁에 나서면서 병상을 무리하게 확장하고 경영수지를 맞추기 위해 검사건수를 높이는 식으로 병원을 운영해왔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값싼 의료인력으로
'수련'보다는 '진료' 역할이 부각됐고, 이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수련환경을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는 "그동안 병원들은 경쟁적으로 늘어난 병상과 검사건수를 채우는 데 전공의를 적극 활용해왔다"면서 "병원은 '전공의=값싼 노동력'이라는 인식을 바꿔 이를
대체할 의료 전담 인력 을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공의 주80시간 근무제는 단순히 전공의들의 업무를 줄여주자는 게 아니라 환자안전 차원에서 논의된 것"이라면서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정부도 일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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