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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시절만 참으면 된다고? 고생 끝에 낙 없더라"

발행날짜: 2015-03-25 06:00:08

삶의 질 추구하는 젊은 의사들…오프 확실한 응급의학과 선호

A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 요즘 전공의들은 삶의 질을 중시하더라. 근데 한번 진지하게 묻고 싶다. 수련환경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지. 몇년 고생해서 배운 지식으로 평생 벌어먹고 사는데 그 정도는 견뎌야지, 확실히 나약해졌다.

B대학병원 2년차 레지던트: 요즘 젊은 의사가 나약하다고? 동의할 수 없다. 나 또한 선배 의사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과거 몇년 만 고생하면 부와 명예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던 과거와 지금이 같다고 생각하는지….

"고생 끝에 먹구름…잠깐만 참으라고 말할 수 있나?"

과거 의사들이 '몇년 고생하면 낙이 온다'는 생각으로 고된 레지던트 시절을 버텼다면 요즘 젊은 의사들은 '고생 끝엔 낙이 없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혹독하게 고생을 해서 수련을 받아도 개원시장은 물론 자신이 원하는 봉직의 자리를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삶의 질' '수련환경 개선' 등 젊은 의사들의 요구가 끊이질 않는 현상에는 이 같은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솔직히 말해보자. 과거 선배들은 4~5년 고생하면 미래가 보장됐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보자. 경쟁력을 갖추려면 레지던트를 마치고도 세부 전문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전임의 혹은 펠로우 과정을 통해 임상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의과대학 과정부터 적어도 15년 이상이 걸린다. 그러고도 미래는 암울하다."

B대학병원 레지던트의 하소연에는 요즘 젊은 의사들의 고민이 배어있다.

10여년에 걸쳐 시간과 돈을 쏟아 부었지만 의료현실은 사회적 명성은 커녕 부를 축적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다 보니 전공의 수련기간 동안 희생을 감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내 인생을 즐기고 싶다'라는 젊은 세대의 인생관이 맞물리면서 나를 희생해서라도 생명을 살리겠다는 의지보다는 내 삶의 안락함과 내 인생을 즐기는 것이 중요한 의사들이 늘고 있다.

"왜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느냐고? 오프가 확실하잖아"

2015년도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모집에서 이 같은 젊은 의사들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대한병원협회 병원신임평가센터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70~80%에 머물렀던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지원율이 2015년도 111.4%(158명 정원, 176명 지원)로 급등했다.

2005년 전국 수련병원 응급의학과 지원율은 91.3%로 간신히 90%를 넘긴 데 이어 2006년 86.5%, 2007년 79.5%, 2008년 83.0%, 2009년 79.0%, 2010년 77.9%으로 매년 추락했다.

이후 2011년 85.9%로 소폭 높아지더니 2012년 91.0%, 2013년 96.3%, 2014년 90.9%에 이어 올해 지원율 100%를 넘겼다.

의료계 비주류로 찬반 신세를 면치 못했던 응급의학과 입장에선 주목할 만한 변화다.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는 벌써부터 내년도 레지던트 지원 의사를 밝힌 인턴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돌연 젊은 의사들이 응급의료에 대한 사명감에 불타오른 것일까. 아쉽지만 <메디칼타임즈>가 만난 응급의학과 전공의 상당수가 공통적으로 밝힌 지원 이유는 "오프가 확실하다"라는 것이었다.

서울대병원 곽영호 교수(응급의학과)는 이 같은 현상을 젊은 의사들의 가치관 변화와 함께 인기과의 몰락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봤다.

"QOL(Quality Of Life)즉,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젊은 의사들의 가치관 변화와 함께 내과 등 과거 부와 명예를 누리던 전문과목의 몰락으로 인기과가 사라진 것에 대한 반사이익도 일부 작용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그에 따르면 실제로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가 늘어나면서 다수의 병원이 24시간 근무하면 2~3일 오프가 가능해졌다.

다시 말해 당직 근무에 대한 부담을 감수할 의향만 있다면 일주일 중 2~3일만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근무환경을 누릴 수 있다.

또 응급의학과 동료 의사들과 협의만 잘 되면 1~2주 휴가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B대학병원 전공의가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이런 메리트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다른 과가 괜찮았다. 하지만 내과마저 몰락하는 이 시점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10여년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자하고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미래에 목 매고 싶지않다. 오프가 확실해 내 시간도 즐길 수 있고, 아직까지는 봉직의 자리도 여유있는 응급의학과가 매력적이다."

고생 끝에 낙을 기대할 수 없는 의료환경. 그 속에서 개인적인 삶의 질을 추구하는 젊은 의사들의 욕구가 더해지면서 한국 의료의 미래는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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