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20대의 청년이 응급실에 실려왔다. 동공이 커지고 서맥이 나타나는 증상이 있었음에도 의료진은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 청년은 결국 사고 보름만에 뇌사 판정을 받고 사망했고, 장기 기증을 했다.
울산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한경근)는 최근 아들을 잃은 부모가 A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병원 측의 과실을 인정하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병원 측이 유족에게 1억5654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 책임은 40%로 제한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택시와 추돌해 뇌 손상을 입고 A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된 권 모 씨.
의료진은 즉시 첫번째 뇌 CT를 촬영했다. 우측 전두부에 8mm 정도 두께의 경막상 출혈이 있었고, 전두부 두개골 골정, 뇌두개저부 골절, 전두동과 접형동 사골동 내 출혈이 관찰됐다. 다만 출혈량이 뇌압상승 및 뇌압박 소견은 없어 수술 적응증은 되지 않았다.
병원에 실려온지 약 1시간이 지나자 권 씨는 구토 및 발작 증세를 보였다. 의료진은 지속적인 발작이 일어나면 뇌출혈 및 뇌부종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수면진정 치료를 시행했다.
그리고 뇌출혈 상태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두번째 뇌CT 촬영을 했다. 전두엽 뇌경막상 출혈은 감소했지만 기저수조에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량은 증가했다.
다음날 새벽, 의료진은 뇌부종 완화를 위해 글리세린, 라식스 등을 지속적으로 투여하고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의료진은 환자의 글래스고우 혼수척도, 활령징후, 동공 크기를 매일 측정했다. 환자의 고열에 대해서는 혈액검사, 배양검사 등을, 발열에 대해서는 쿨링패드를 적용했지만 빈맥과 서맥은 경과를 관찰하기만 했다.
동공 크기가 좌우 차이를 보였는데도 의료진은 환자 보호자에게 원인, 치료방법, 예후 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권 씨가 입원한지 일주일 째, 의료진은 세번째 뇌CT 촬영을 했다. 이전보다 외상성 뇌출혈증가가 나타나지 않고 좌측 전두부에 기뇌증이 증가했다.
그리고 또 일주일 후, 환자의 동공 크기가 심하게 확대되고, 저혈압과 빈혈 증상 등이 나타났다. 의료진은 네번째 뇌CT 촬영을 한 결과 뇌사 상태임을 확인했다.
네번째 뇌CT를 촬영하기까지 일주일 사이 환자의 코에서 끈적한 피색깔의 삼출물이 나오고 빈맥, 저산소 상태가 측정됐지만 병원 측은 이비인후과와 협진만 하고 다른 특별한 추가 치료는 하지 않았다.
권 씨의 부모는 병원 측이 뇌부종 완화를 위한 약물을 즉시 투약하지 않았고, 경과관찰의무 소홀 및 응급 감압 개두술을 미실시 했으며 설명의무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유족 측의 주장 중 경과관찰의무 소홀 및 응급 감압 개두술을 미실시 부분의 과실과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유족 측은 "두부외상으로 뇌부종 악화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기적, 반복적으로 경과를 자세히 관찰해야 함에도 환자를 수면 상태로 유도해 놓은 채 활력징후 측정을 소홀히 하고 뇌 CT촬영을 반복적으로 실시하지 않았으며 뇌압감시 모니터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이어 "고체온, 고혈압, 동공크기 차이, 서맥, 뇌척수액 누출 등과 같은 전형적인 뇌부종으로 두개강내압상승 증상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의료진은 응급 감압 개두술 실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도 이같은 주장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반복적인 뇌CT 촬영을 통한 망인의 뇌기능 상태 관찰을 소홀히 해 조기에 뇌부종이 악화된 상태를 발견하고 수술적 치료방법인 감압 개두술 등을 시행할 시기를 놓친 과실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환자의 최초 두부손상 부위와 뇌부종 발생 부위가 일치한다. 뇌부종 악화 증상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환자의 뇌탈출 등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다"며 "그로인해 수술적 치료 시행 시기를 놓쳤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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