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어느 대학 학생이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학우들에게 '하 수상한 시절에 모두 안녕들하십니까' 라고 묻는 대자보를 붙여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때에도 그는 직접 쓴 글을 통해 사회 현안들에 대해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느냐'고 질타했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등의 강압적인 현지조사(실사)로 인해 자살까지 이른 의사에 대한 추모와 함께 뭇 의사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많은 의사들은 강압적인 조사가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고 성토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심평원은 전신(前身)인 의료보험연합회의 뒤를 이어 건강보험 서비스의 공급자인 의료기관과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중간에서 요양급여비용을 심사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심평원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이 커져가고 있다. 법령이나 고시에 의하지 않은 자의적인 '심사기준'을 통해 진료비를 무차별 삭감함으로써 진료 현장의 의료진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나아가 의료기관 현지조사 때에는 종종 강압적인 분위기와 모욕적인 언사로 의사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공단 역시 '현지확인'이나 '수진자조회'라는 미명 하에 진료자료 제출을 강요하거나 환자에게 유도질문을 하는 등 의사-환자 간 신뢰를 깨뜨리며 의사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사를 자신들이 직접 하겠다고 하면서 보험자의 위치를 망각하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런 조사의 근거가 단지 의료법이나 국민건강보험법이라는 거다. 헌법 제12조에 보장된 영장주의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지난 15년 동안 의사들은 영장도 없이 압수수색이나 다름없는 조사를 통해 탈탈 털렸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서명을 거부할 권리나 변호사의 선임권 등을 고지 받지도 못했다.
물론 이런 부당한 일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으나,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감으로써 의사들의 인내심의 임계점을 넘어간 것이다. 즉 대한민국 의사라면 누구라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함께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금껏 현지조사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의사들의 호소가 적지 않았으나, 의사 사회 내에서조차 '뭔가 문제가 있으니 조사를 받지 않았겠느냐' 하는 부정적인 시각과 함께 '나만 아니라면 무슨 상관' 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겹쳐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서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필자 또한 과거에 그러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이젠 더 이상 부당한 현지조사에 대해 묵과해서는 안 된다. 진료비의 청구 및 지급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조사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면서 이뤄져야지, 의사들 위에 군림하는 '갑질 조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설령 잘못이 있다면 법에 근거하여 처벌해야지, 인격적인 모독을 주거나 법에 의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의사 사회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그냥 방치할 경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굳어져서 합법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남 일처럼 생각해서도 안 된다. 언젠가는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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